한국일보

사설: 공존의 원칙 그리고 아이티

2010-0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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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2010년 경인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3주가 되었다. 새해 아침에 세운 계획을 아직도 잘 지켜나가고 있다면 적어도 작심삼일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에 속하는 인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격언은 유럽에도 있다. ‘시작을 잘 하면 반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이다. 또 신학박사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뮈스는 그의 격언집에서 ‘시작은 전체의 절반’ 이라는 라틴어격언을 수록했다. 시작만 잘 해도 많은 문제들을 절반 이상 해결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새해 초에 새로운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목표치를 설정하면 그 목표가 자신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올바른 원칙을 세우면 인생은 거의 성공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기 삶의 이념과 원칙을 천천히 되짚어보는 일이야 말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삶의 원칙만 잘 잡아도 그 인생은 거의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 속담에 ‘빨리 먹은 콩밥, × 눌때 보자 한다’는 우리 속담은 ‘일은 어떻게 하거나 반드시 그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거나 급히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는 뜻도 있다. 모래 위에 짓는 집은 쉽게 지을 수 있을지 몰라도 무너지는 것도 쉬운 일이다. 맑은 날에야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견딜 재간이 없다. 대충대충 사는 삶이 편하고 쉬워 보여도 때가 되면 알게 된다.


속담이야기 하나 더 해보자면 ‘장례식 날 날씨가 좋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삶의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인가? 덕을 쌓으며 살자는 원칙을 세웠으면 좋겠다. 베풀며 살자는 원칙이다. 그래서 우리 고전에는 착한 일을 하면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고 그렇지 못하면 집에 재앙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마리의 송사리를 키울 수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송사리가 죽으면 바다도 죽는다. 바다가
있음으로 송사리도 있는 것이다. 송사리는 바다를 고마워해야 한다. 바다의 고마움을 모르는 송사리는 죽은 송사리다. 죽은 송사리는 어차피 바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다는 송사리를 위해 있고 송사리는 바다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한 마리의 송사리를 위함이 실은 바다를 위함이다. 한 마리의 송사리가 잘 자랄 수 있게 함이 바로 바다를 바다 되게 함인 것이다.

공존의 윤리가 존재의 윤리요. 공존의 논리가 존재의 논리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어야 한다. 함께 살려면 서로가 도와야 한다. 도움은 가진 것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없는 자라도 가진 것이 있는 법이다. 저 아이티의 참상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순식간에 불어닥친 대지진으로 아이티 사람들은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울부짖고 있다. 물과 먹을 것이 없고 의료진의 도움이 없으면 그들은 지금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고마움을 나누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나 한 사람의 선행이 위기에 빠져있는 사람을 돕는 것처럼 나 한 사람의 도움이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내고 그들이 속해있는 나라를 구조할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 지금 당장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지금 세계는 나눔의 실천으로 고통과 절망, 슬픔에 빠진 저들의 한 가닥 희망이 되고 있다. 유엔이 앞장서서 세계기구에 적극적인 도움을 호소하고 나섰고 미국도 제일 먼저 나서 전직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아가고 군인들과 경찰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유럽연합과 한국 등 다른 나라들도 한명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것 등의 구호물자와 의료진들을 모두 앞 다투어 급파하고 있다.
우리도 시작이 절반이라고, 한 해의 출발을 공존의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TV화면에 매일 보이는 저 참혹한 현장의 수많은 아이티 난민 돕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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