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욕지도(欲知島)

2010-0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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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널려있는 무수한 한려수도 섬, 섬 사이를 숨바꼭질 하듯 한참을 돌고 돌아가다가 땀 젖은 양말을 벗어 버리듯 벗어나서 한 칠 팔 십리쯤 갔을까, 경남 통영도 서울에서 먼데 통영 관할구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통영에서 더 멀리 끝자락으로 밀려난 섬 욕지도. 그래서인지 욕지도 사람들은 통영을 생활 연결지로 여기지 않고 아무 상관도 없는 부산을 오락가락 하면서 비벼대고 산다.욕지도는 그 절경의 풍관이 귀양 간 선비의 정장한 자태와 같아 욕지도 주민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른 섬사람들 보다는 조금 고급스럽다. 금강산 발치에서 버림받은 해금강이 금강산 덕분에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욕지도만은 못하다. 욕지도는 섬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넉넉하다.우리나라는 3510개의 크고 작은 섬이 바다에 흩어져 외곽에서 본토를 지키고 있다. 그 많은 섬
들 가운데 44번째로 큰 섬이니 고대사에 고자미동국이란 이름으로 옛 지리서에 끼어 있을 만도 하다. 섬을 한 바퀴 돌고나서 생각을 해 보면 다른 섬과 달리 이곳에서는 만석 지기는 아니더라도 천석 지기는 충분히 나올 법도 하다고 느껴진다. 그만큼 큰 섬이다. 9개의 유인도, 30개의 무인도, 법정 5리에 행정 30리나 되는 큰 섬이니 천여 가구 중에서 잘만하면 큰 부자가 나올 만도 하다.

그래, 부자가 되려나 보다. 수산자원이 풍부하니 물질하는 욕지도 해녀들은 제주도 해녀들보다 더 억척스럽다. 억척으로 거두어들인 해산물로 끼니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살만하니 가난을 피해 도시로 도망간 서방님을 찾아 데리고 오라고 진한 농담을 할 정도로 모두 여유있게 산다. 바다 끝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석양도 여유롭다. 그 색깔이 진하고 거대해서 스치기만 해도 거
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욕지도 해안 절벽의 경관을 마실 삼아 걸어가다가 욕지도 경관에는 저도 어쩌지 못하여 진하디 진한 물감을 더 섞어 절벽을 째려보다가 저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에 무안한 얼굴을 붉히면서 핏물 같은 노을 몇 조각을 떨어뜨려 놓고 수평선 너머로 돌아선다.


그때에는 산야에 흩어져 놀던 야생 염소들이 떼를 지어 다니다가 두 손 들고 돌아서는 석양을 향해 시끄럽게 웃어대며 호들갑을 떤다. 승리의 맛이 그러할까?
욕지도에서 가장 높은 천황산에 올라 옆을 보면 바로 옆에 연화도가 눈에 잡힌다. 연꽃 섬, 불교가 자리 잡고 이 섬을 독차지하고 있으나 욕지도에는 영화에도 나왔다는 할머니 한분의 힘으로 새로운 에덴동산을 가꾸어 기도실도 만들어 놓는 등, 기독교가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정말 가까운 친구가 있으면 둘이 가서 바다를 향해 앉은 바위에 앉아 기도를 길게 하고 싶은 욕지도, 앙드레 지드가 순정의 본질을 주제삼아 펼쳐 쓴 소설 ‘좁은 문’의 주인공인 제롬과 같은
마음을 가진 남자친구가 있다면 마음 놓고 함께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욕지도.

경기도 광능의 진한 숲길보다도 더욱 지독하게 하늘을 가리는 독한 숲길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밝게 트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마음이 욕지도 바닷가 절벽 바위에 앉아 욕지도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시린 가슴을 쓰다듬어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때문일까? 욕지도는 사람의 마음을 종교적으로 바꾸어 주면서 시달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정리해 준다. 도시생활에 어두워진 사람의 얼굴을 밝은 사람의 얼굴로 돌아오도록 잡은 손을 당긴다. 욕지도, 또 가고 싶은 섬, 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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