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

2010-01-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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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박사는 사람이 ‘이 나이에...’ 하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순간, 우리의 나머지 인생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되고 만다고 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기 최면은 실제 뇌 세포의 사멸 속도를 빨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가 아니라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잘 되기 위한 목표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중에서 배움과 관련된 결심은 대체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처음부터 멀리하기가 쉽다. 중년이 되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 혹시 누구라도 ‘이 나이에’ 하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였다면, 그런 사람은 배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젊음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이 나이에’가 아니라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라고 마음을 바꾸었으면 한다.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우선 ‘고운미소’와 ‘아름다운 말 한마디’다.

고운미소와 진심어린 말 한마디는 나의 삶을 빛나게 하는 보석이다. 그런데도 이민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미소는 커녕, 말 한 마디도 곱게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게 우리들이다. 어쩌다 길이나 어떤 장소에서 한인들은 서로가 마주쳐도 오히려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상례여서 인상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남이 즐거운 게 아니라 오히려 불쾌해지거나 두렵기 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사실 너무나 여유없이 살다보니 칭찬에도 인색하다. 남이 뭘 좀 잘하면 ‘잘했다’ 칭찬보다는 깎아내리기 일쑤다. 이기심과 시기심의 발로이다. 이런 못된 습성이나 성품은 이제 좀 버렸으면 한다. 따뜻한 미소로 칭찬하며 격려해주는 말을 할 때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맛나는
곳이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우리 마음의 폭도 넓어질 때가 되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짬을 낸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노인이나 장애자, 또는 환자들이 있는 양로원이나 병원을 찾아 그들이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손발이 돼주고 말벗이 되거나 돌보아주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보람감과 남다른 성취감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해서 생각하고 관심쏟고 도와주는 일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민생활에서 1세들은 그동안 돈버는 일에만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나의 인생을 살찌우기 위한 생활에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투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풍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최대한 자신을 살찌우는 일에 관심을 써야겠다. 영어나 컴퓨터 배우기, 미술이나 음악 감상 같은 문화산책, 여행, 등산, 낚시, 스포츠 등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특기를 살려 이민생활의 새로운 기쁨과 보람을 느껴보자. 삶의 목적과 기준을 어디다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와 가치는 달라진다. 지난 해 방송에서 주목을 끌었던 일본의 의사 오츠 슈이츠가 1000명 이상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죽기전 마지막 순간에 아쉬워하는 일들을 정리해서 쓴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들을 후회하는 것들로 꼽았다.

그동안 이민와서 자녀를 성장시킨 부모들의 연령은 어느덧 60세를 전후한 나이가 돼버렸다. 이들은 거의가 열심히 살다보니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후회한다. 이제는 돈에 대한 욕심에 삶의 무게를 두기 보다는 남은 인생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하겠다. 분주히 살다보니 한 해 한해 세월이 자꾸 간다. 그러나 아직도 시간은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을 “시간이 없어서” 라고 에디슨은 말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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