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회의 지체는 누구인가

2010-01-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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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자유기고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그리고 교인 각자는 그 지체라고 한다. 지체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한다. 성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주어지는 것을 보고, 느끼고, 그리고, 각자가 머리로 부터 지시를 받아 그 지체를 움직여가야 하는 것이 교회다. 그 교회가 비정상적으로 비틀거리고 병들어가고,
사회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는 이유 중의 가장 큰 뿌리가 목회자를 포함해 교회의 각 지체가 되는 성도가 그 지체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감각기관의 일을 다 할수는 없다. 또한 입이 할 일을 귀가 할 수도 없다. 현 시대의 한국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그 지체의 의미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목회자 혼자 모든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고, 무엇보다 머리의 일까지 감당하려 한다. 교인들은 머리인 예수님을 잊고 목회자를 지체의 머리로 여기기를 원한다. 목회자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방향이 잘못되어 간다. 성도가 모두 느끼고, 말하고, 그를 자유롭게 그러나 겸손히 나누어야 하는 곳이 교회다. 그러나, 목회자의 생각과 다른 것을 불순종으로 단정짓고 목회자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여길 때, 교인이 교회의 한 지체됨은 무너진다.


목회자가 스스로 교회의 머리가 되고 스스로 혼자만이 가장 완전한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로 여겨진다면, 그 것은 더 이상 한 지체일 수 없다. 손도, 발도, 귀도, 코도 없는 몸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듯이, 그런 곳은 더 이상 교회가 될수 없고 그리스도의 몸일 수가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은 지도자에게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원해서 왕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왕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그 왕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은 왕 자신이 아니라 사실은 그를 왕으로 만든 백성들이다.

왕을 원하는 이유는 의타적인 생각 때문일 수도, 자기 유익을 구하기가 수월해서, 혹은 인정받는 것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기에, 아니면 단지 그 왕 된 이가 너무 존경스러워서 일수도 있다. 그 이유가 선할 수도, 또, 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 결과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을 만드는 것이라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우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유교적인 관습으로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각 교인은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교회의 지체다. 그 정체성을 가지고 겸손함으로 각 지체됨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각 지체가 각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온전히 감당하려 노력할 때,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지체는 그래도 온전함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를 포함해 서로가 낮아져서 서로를 인정하고 도와주고 붙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겸손일 것이다.

특히 목회자는 그 지체됨의 사명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 가슴을 전하는 설교자다. 그는 귀를 열어두고 모든 지체가 또 이 세대가 갖는 고통을 듣고, 느끼고, 또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듣고 파악해 각 지체에게 다시 전하는 것이 그 사명이다. 그런 이가 귀를 막는다면, 또 스스로 머리가 되어 자신이 지체의 일부임을 망각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은 그를 통해 말씀하시기 힘들 것이다.

지체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머리가 둘인 몸은 더 이상 정상적인 사람일 수가 없다. 모든 이의 귀와 입을 막아 버린다면, 왕은 될수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마음은 더 이상 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가슴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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