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2009-12-21 (월)
크게 작게
의대생과 함께 하는 해부학 실습이 끝나고 나면 치대생들은 따로 머리 해부를 많이 했다.

기증된 시체에 대하여는 물론 감사하는 마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인체 전체에서 머리 부분만 떼어낸 모습은 좀 기괴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때 시체를 보관된 장소로부터 해부실험실까지 옮기는 일을 주로 학생들이 맡았는데 나는 웬일인지 늘 그런 일에 차출을 당했다. “김범수 학생! 이것을 들고 가게나, 조심해서 다뤄야 하네.”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머리 부분을 두 손으로 드는데 세상에!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인체의 무게가 머리에 다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한 사람의 살아 있음과 죽음이 두개골 안에 들은 뇌의 활동에 따라 판가름나고 사랑함과 미워함, 슬퍼함과 기뻐함이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무거운 머리를 낑낑 받쳐 들며 느꼈던 교차된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머리는 한마디로 복잡하다. 기독교 표현으로 하자면 신비하다. 어떤 컴퓨터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아 때부터 두뇌에 입력되는 정보와 생후에 교육과 환경을 통해 주입되는 정보량을 따지면 몸뚱이 전체가 머리 무게 하나 감당하기도 무거울 것이다.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 아날로그 시절에는 정보량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몬스터’가 등장한 이래 미국인 한 사람이 하루에 흡수하는 평균 데이터 정보의 양은 무려 34기가바이트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한 편이 약 1,000메가 바이트, 즉 1기가바이트 정도 된다면 우리 머릿속에 하루에 새 영화 34편 정도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보를 얻는 통로는 주로 TV. 그 밖에 라디오, 인터넷, 문자 메시지, 비디오 게임 등이다. 인쇄매체는 정보 소스 순위에서 급속히 감소할 뿐 상위 몇 째 안에 꼽히지도 않는다.

고등학생인 아이와 시합을 한 적이 있다. 전날 밤에 30개의 새 SAT 단어를 리스트로 만들고 이튿날 각자 알아서 외운다. 다시 밤에 만나 그 전날 골랐던 단어의 스펠링과 뜻을 물어보는 내기 시합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의 백전백패. 뇌세포가 활발히 분열하는 10대 아이의 두뇌를 하루가 다르게 세포가 죽어간다는 50대 아빠가 이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루 평균 300~500개의 새 단어를 습득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두뇌활동을 따라갈 수 없으니 남들이 34기가를 흡수하는 동안 밤잠 자지 않고 노력하여 50기가로 정보량을 늘리면 행복할까? 머릿속에 지식이 넘치면 매사에 성공할까? 하늘이 주신 지혜자 솔로몬은 고개를 흔든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도서 1:18). 성경은 계속해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잠언 1:7)이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빌립보서 3:8)고 말한다.

내 무거운 머리에 접수된 쓸 데 없는 정보도 이미 차고 넘친다. 한 해의 끝, 머리무게를 좀 더 가볍게,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기도처럼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한 삶’(God alone is enough)을 위해 나는 정보의 홍수에서 더 멀리 도망을 치겠다.


김범수 (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