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한인사회를 풍요롭게 하려면

2009-12-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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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게는 월드비전 일 외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집사람의 샤핑몰 내 ‘키오스크 비즈니스’를 돕는 일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가중되는 정서적, 언어적 어려움과 존재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집사람이 친지로부터 넘겨받은 것입니다.

메이시스, 노스트롬 등 백화점들이 즐비한 대형 샤핑몰 통로에서 여름에는 선글라스, 겨울에는 동물 모양을 한 실내용 슬리퍼를 취급하는 소규모 자영업인데, 의욕만 앞섰지 경험이 전무한 데다 경기까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매월 임대비와 종업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물론 집사람에게는 삶의 활력소였지만 적자 운영은 또 하나의 현실인지라, 궁리 끝에 지난 가을부터 파트타임 종업원을 그만두게 하고 주말과 바쁘지 않은 날 오후 필자가 직접 가게를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하더니, 3~4개월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매출 신장에 기여하는 능력(?)을 보여 집사람에게 칭찬받는 재미도 쏠쏠하게 누렸습니다.

지난 주 블랙 프라이데이였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집사람과 함께 상점 문을 열고는 샤핑의 대혼란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오후쯤 척 보기에도 한국인인 고교생 정도의 두 딸과 엄마, 아빠로 구성된 가족이 우리 키오스크를 지나다 동물 슬리퍼를 보고는 “아빠! 이거 기숙사에서 신으면 완전 대박이다!” “필요하면 골라. 아빠가 사줄게”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한국말이 반가워 “한국분이시네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상품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그런 거를 사서 어디에 쓰냐?” 라는 퉁명스러운 말이 들렸습니다. 옆에 서있던 40대 후반 정도의 엄마가 뱉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족을 이끌고 바로 앞 속옷 전문점 ‘빅토리아스 시크릿’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무례를 넘어 몰상식한 그분의 말이 필자는 불쾌를 넘어 괘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날뿐 아니라 전에도 한국인 손님을 만날 때마다 이런 불쾌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먼 이국땅에서 만난 내 민족에게서 받는 느낌이 영원히 타인일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에게 받는 느낌보다 못하다는 것은 정말 수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인 손님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첫째는 오만불손형입니다. 주인이 한국인인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우리는 당신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말투로 애써 강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유형입니다. 물론 물건도 안 삽니다. 둘째는 막무가내 디스카운트형입니다. 한국인이 주인인 것을 알면 무조건 깎으려 드는 유형이지요. 심지어는 “우리끼리 뭘…” 하면서 판매세 없이 현금거래를 하자고 우기기도 합니다. 셋째는 물건타박형입니다. 이 물건 저 물건 손때만 잔뜩 묻혀놓고는 훌쩍 가버립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기는커녕, 무례하게 대하고, 벗겨 먹으려고 하고, 헐뜯고, 심지어는 한국인인 것을 안 나타내려고 슬금슬금 피하고…. 왜 그러는 걸까요? 일종의 일그러진 보상심리일까요? 몇 개월 남짓한 짧은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이것이 우리 한인사회에 존재하는 불편한 현실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 속에도 이런 현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타국을 내 조국 삼아 살아야 하는 것이 이민사회의 인연이라면, 최소한 오천년을 자랑스럽게 이어온 문화적, 언어적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신뢰하고 도우며 사는 것은 그 인연을 풍요롭게 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않을까요?

30-40분 후 빅토리아스 시크릿에서 나오는 그 가족에게, 아니 정확히는 그 엄마에게 기어코 한 마디 건넸습니다. “슬리퍼는 신으려고 사는 거예요. 모르셨어요?”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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