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만 폴란스키 (1)

2009-10-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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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는 소위 “나영이 사건”을 다루면서 언론들이 약 30년전 미국에서 발생하였던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미성년자 강간사건”과 연계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로만 폴란스키”라는 영화감독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과히 많지 않다. 로만은 1935년 유태인계 폴란드인의 부모하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로만이 세살 되던 해에 폴란드로 이주하여 살았으나, 2차대전이 발발하자 얼마 안 되어 그의 어머니는 집단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살해 당하였다. 그리고 그와 아버지도 그 수용소에 종전때 까지 갇혀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가 어린 나이에 겪었던 이 어두운 경험은 그의 영혼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어, 평생을 억누르는 무거운 멍에가 되었던 것 같다. 그가 어린시절 맨 처음 본 영화 “백설 공주”는 그를 장차 영화배우 또는 영화감독이 되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는 폴란드에서 영화 감독의 수업을 받았으며, 공산주의 치하인 폴란드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에서 그다지 큰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그는 우선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에서 영화 감독을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The Dance of Vampire”라는 영화를 만들며 젊고 아름다운 “샤론 테이트”라는 여배우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헐리웃에 거주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때 만든 영화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Rosemary’s Baby”이다. 이때가 그의 미국생활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으며 번창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69년 8월 9일! 그의 사랑했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자택에서 일단의 괴한들에게 칼로 난자 당하여 집단 살해되면서, 그의 삶은 다시 혼란과 몰락의 깊은 골짜기에 빠지기 시작한다. 사랑하고 아끼던 처를 잃은 후, 절망하고 낙심하여 방탕하고 방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감독 일에 열중하여, 1974년 “잭 니콜슨” 주연의 “챠이나 타운”은 큰 히트를 하였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쓰라린 경험과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끝내 그를 마약과 섹스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19977년 3월 11일, 일단의 영화 촬영 스태프들과 함께 그가 묵고 있던 베벌리 윌셔 호텔을 나서던 그는 구속영장을 가지고 나타난 형사들에 의하여 구속되었다. 그의 죄목은 “미성년자에게 금지 약물 제공”, 미성년자 추행”, “미성년자와 불법 성행위” “마약을 이용한 미성년자 강간”, “변태 성욕”, “수간” 등 여섯가지 죄목이었다. “로만”이 이렇게 미성년자 강간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모든 유수 언론들은 물론 유럽의 거의 모든 언론들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유럽쪽의 언론 대부분은 불우하고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특출한 역사적 산물이며 비극적인 삶의 “로만”이 헐리웃에 와서 과거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일구어 낸 입지전적 인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미국쪽의 언론들은 그와는 반대로 그가 아직 어두운 과거 역사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미숙하고 작은 난장이 같은 이방인으로 취급하였다. 실제로 “로만”은 영어도 액센트가 강하며 유창하지 못했고, 키도 5피트가 조금 넘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특히 그를 체포했던 “산타 모니카” 경찰서와 그곳 법원의 판사와 직원들은 그를 “폴락의 난장이”라고 비하하여 불렀다(폴락: 폴랜드 사람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아마도 “로만”이 “챠이나 타운”이나 기타의 영화에서 LA시 공무원이나 경찰들의 부패상과 비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식의 영화를 만든 것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어쨋든 재판은 시작되었고 “로만”은 “더글라스 달튼”이라는 강력하고 유능하며 경험이 많은 50대 후반의 변호사를 고용하였다.

그리고 검찰은 그에 반하여 “로저 건슨”이라는 37세의 젊고 독실한 몰몬교 출신의 원칙 주의자를 검사로 발탁하였다. 이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는 72세의 “로렌스 리튼밴드”가 자원하였다. 그는 전에도 “케리 그랜트”, 말론 브랜드”, “엘비스 프레슬리”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재판을 맡아 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뉴스의 각광 받기를 좋아하였고 성격이 괴팍스럽고 까다로우며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판사였다.


키 한 /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310)968-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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