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스리는 자의 행복

2009-09-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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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정궤도에 오르지 못한 경제지표가 우리에게 안정을 주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말 그대로 그 운 때문인지 이민 세월을 역으로 산 것 같은 억울함이 든다는 분들이 많아졌다.

대궐 같은 집은 아니어도 어렵사리 장만한 내 집이 부채만 커져 심란하기만 하다.


모처럼 다녀 온 서울에서 반갑다고 한 숨에 달려 온 동창의 손가락에 매달린 보석반지가 두 눈에 클로즈 업 되어 들어온다.

맛사지 한 번 번번이 못 받고 그저 성실하게 살아 온 투박한 손을 살며시 접게 되었다. 종업원 한사람 아낀다며 혼자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분주하게만 살아왔는데 그렇게 그리던 서울이 군데군데 낯설어진다.

만나는 곳마다 부동산과 주식투자가 화제로 등장한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며 어쩌다 주말에 외식 한 번 하는 것을 삶의 작은 기쁨으로 생각한 소박한 행복이 짧은 여정에서인지 서울에선 보이지 않는다.

단지 늘 얼굴 마주 보며 일하니까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그리고 주어진 일로 인해 그들보다는 더 젊게 살 수 있다는 요소가 이민생활의 엔돌핀으로 돌아온다.

중학교부터 입시를 방불케 하는 교육열에서 자식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도 힘든 이민생활을 잘 견디게 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모처럼 겪은 후덥지근한 서울 날씨만큼 마음은 개운치 못하다.


집과 부채가 많아 파산선고 한 후 마음을 다지느라 고향을 다녀 온 어느 고객의 잔잔한 고백에 백번 공감하며 바쁘게만 살아 온 미국생활을 잠시 돌아본다.

성공하기 전엔 결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오늘의 가정 안정과 굳건한 코리아 타운을 만들게 했음을 나름 믿는다.

사람들과 휩쓸려 살기보다 가정과 자연을 즐길 수 있어 그나마 이 땅에 맘 붙이고 살면서 편안한 정서를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음이 참 다행스럽다.

검소한 습관으로 인해 특별히 대단한 부자나 가난한 자의 생활이 큰 차이가 없는 미국에서, 크고 작은 물질의 소유로 행복을 점치지 않는 미국에서 소박한 삶을 배운다.

성실하게 사는 부모를 보고 반듯하게 자라는 2세들의 모습이 든든하기만 하다.
여러 장벽이 가로막은 미국에서 스포츠로 ‘코리아’가 뜨면서 어느 새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아이들에게도 갈채를 보낸다.

살아가면서 알 수 없는 삶의 굴곡에 암담해지고 좌절할 수 있지만 그 고비를 넘겨 돌아보면 안타깝게 산 세월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너무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어느 한 고객은 성공만 보고 살았더니 막상 주변에 좋은 사람 하나 두지 못했다며 탄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주어진 삶에 모두 만족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요즘 집 크기만큼 남아 있는 융자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인다.

집이 여러 채가 있으면 부러워 하던 주변이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뀐다.

집이 없어 안타까웠던 사람들은 오히려 부담이 없어 자유로워 갑자기 공평해 진다.

갖지 못해 소란스럽다가도 지나고 나면 그렇게 애닯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화려한 옷가지가 이사할 때마다 짐이라 여겨지고 매끼 맛있는 외식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소박한 밥상이 아름답게 보일 때 비로서 삶을 관조하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올해 들어 줄줄이 지면을 장식한 부고 소식에 갑자기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마음이 병이라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나름대로의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을 다스린다는 건 너무 힘들다. 그러나 나를 둘러 싼 그들까지 행복하기 위해 크고 작은 구속을 던져야 한다.

내 집이 아니려니, 내 복이 아니려니 하며 놓아주는 자유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두 손에 쥐고 있을 때 이런 지혜가 쉽게 나오지 않는 계속 갈증이 나는 욕심을 이젠 접기도 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 남겨진 모든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562)304-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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