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목마름

2009-09-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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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은 의지를 키우는 축복의 힘이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사막에 사는 어떤 나무는 수분을 얻기 위해 수마일 넘게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고 그 생명력 앞에 감동을 느낀다. 그것도 부드러운 흙 속이 아니라 척박한 모래와 바위틈 사이를 헤집고 뻗어나가니 말이다. 이와는 달리 물가의 나무는 쉽게 수분을 얻을 수 있기에 뿌리가 깊지 않아 장마철에 강풍이 불면 쉽게 넘어질 위험에 처한다.

이는 인간 삶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운동선수들만 봐도 그렇다. 배가 고프기에 이를 악물고 피나는 연습을 해 꿈을 이룬 선수들이 일단 돈을 벌고 명예를 얻으면 쉽게 무너지는 경우들을 본다. 목마름이 없기에 의지가 약해진 탓일까?


아예 뿌리조차 내릴 정도가 안 되면, 나무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사람도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는 의지의 싹이 트기도 전에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목이 마르면 물을 찾게 되어 있고, 배고프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음식을 찾게 되어 있다. 본능적인 생존 의지 때문이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옆에 있는 ‘예멘’이라는 조그만 나라는 무척 가난했다. 온 국토가 척박한 환경 탓에 온 국민이 너나할 것 없이 부지런히 일해서 먹고 살던 나라였다. 그런데 몇 년 전 갑자기 땅 속에서 기름이 터지면서 부자나라가 됐다. 그러자 얼마 안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돈으로 대학까지 무료가 되고 삶이 윤택해지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거리마다 뒹굴기 시작한 것이다. 배부른 젊은이들로부터 더 이상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삶의 의지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나가신 ‘김대중’ 전임 대통령의 삶도 알고 보면 민주화에 대한 갈증 그 자체였다. 그분을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게서 자유를 박탈해 간 독재의 억압이었다. 그분은 군사독재 치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그 때문에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명예와 부를 보장해 주겠다는 독재정권의 회유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억눌린 자들의 ‘희망’이 되는 길을 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5번의 죽을 고비와 6년간의 옥중생활, 10년간의 가택연금을 겪는 등 고난이 깊어질수록 민주화에 대한 그분의 ‘갈증’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그분의 ‘행동하는 양심’은 마침내 한국 민주화의 꿈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그분에게 ‘제15대 대통령’직으로 보은했고, 국제사회는 ‘노벨평화상’을 선물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불굴의 ‘인동초’ 같은 삶이었다. 얼어붙은 동토 아래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처럼,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굴할 줄 모르는 꿈과 희망의 화신이었다.

최근 우리가 체험하는 어려운 경제상황은 분명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어려움마저도 분명코 우리에게 삶의 의지를 키워주는 ‘목마름’이 되어, 이민살이가 더욱 견고하고 튼튼해질 수 있는 복의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 또한 간절해진다.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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