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음 이야기 - 성경, 소설인가 실화인가?

2009-08-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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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책이니 저 정도 가격은 뭐 그러려니 해야 하나….” 최근 영국 경매회사 소더비가 3세기 고대 성경 한 장의 낙찰가를 100만 달러로 예상하자 한 네티즌이 빈정대며 남긴 말이다. 그 밑에는 더 강도 높은 안티성 댓글도 있다. “이집트 신화를 모방한 소설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는 소비자가 아니라 광신도들이다. 이걸 가지면 신과 만나기라도 하는가?”
성경의 역사성을 깎아내리는 공격은 이뿐만 아니다. ‘다 빈치 코드’ ‘예수는 없다’ ‘예수는 신화다’ 같은 책들이 한 몫씩 거들었다. 성경은 가공의 소설인가, 신의 말이 담긴 실화인가.

웬만한 집에는 ‘교양용’ 성경이 한 권씩은 있다. 물론 익숙한 베스트셀러 고전의 하나다. 만일 성경이 정말 신의 책이라면, 책꽂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침묵만 강요당하기란 너무 큰 실례가 아닐까.

인류 역사상 신의 ‘육성’을 직접 들은 세대는 많지 않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가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사 44:24)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면 어땠을까. ‘사미인곡’에서 ‘조화옹’의 기막힌 창조 솜씨를 빼어난 절창으로 한껏 칭송하던 조선시대 시인 송강 정철의 반응은 또 어땠을까.


그들에게 성경은 감히 그 존재를 상상조차 못할 희귀한 책일 것이다. 지금은 성경이 너무도 흔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귀한 음성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홍수에 정작 마실 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인간, 역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 자연세계의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 인간의 정교한 육체와 내면(양심)의 도덕적 특성, ‘심은 대로 거두는’ 삶의 이치나 각 나라 흥망성쇠의 패턴을 포함해 인류사를 두루 관통하는 일정한 법칙(특히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가장 뚜렷한 그분의 손길이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인격적인 한 주권자의 존재를 증거한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라고 한다. 이 계시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 이 계시를 보고도 하나님을 거부한 자는 죽은 후 반드시 그 책임을 진다. 존귀한 사람의 기원을 우연이나 바이러스로 돌린 숱한 진화론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 계시는 삶과 죽음의 전말을 정확히 다 보여주진 못한다. 어떤 주장이 절대진리가 되려면 세상과 인간의 기원, 삶과 죽음의 이유를 밝혀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 전모는 유일하게 창조와 타락의 현장에 모두 계셨던 하나님만 아신다. 그래서 자신의 말씀을 맡길 한 민족을 택했다. 이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특별계시라고 한다.

특별계시 이전 사람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다. 다만 지금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큰 책임을 면치 못한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이 땅에서 신을 만나고 싶은가. 성경에 쌓인 두툼한 먼지부터 털어내라. 성경은 여느 종교 경전들과 달리 시공간의 출처가 분명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성경은 소설이 아니며 기독교의 저자는 사람이 아니다. 신의 존재와 같이 신의 음성을 담은 책 역시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는 듯해도 찾는 자에게만 비밀리에 드러난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 119:2).

안환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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