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와 바람

2009-08-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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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해와 바람이 대결하면 어느 쪽이 이길까? 이솝의 우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 싸움은 해가 이긴다. 나그네의 외투를 강제로 벗기려고 바람이 최대한의 강도를 높였지만 바람이 억세면 억셀수록 나그네의 자위(自衛) 노력도 커져서 외투가 날아가지 않도록 결사적으로 방어한다. 바람이 실패하자 해의 차례가 되었다. 해는 나그네를 따뜻하게 감싼다. 더워서 땀이 흐르는데 외투를 두르고 있을 어리석은 자는 없다. 나그네는 누구의 명령도 강압도 없었지만 스스로 외투를 벗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해가 성공한 것이다.

솜과 강철이 대결하면 어느 쪽이 이길까? 남북전쟁 때 남군이 솜으로 방탄벽을 만들어 북군의 대포를 막아냈다는 유명한 전쟁사화가 있다. 부드러운 솜이 쇠보다 강했던 것이다. 군사 독재는 세계 여러 나라에 있었다. 비무장의 군중을 총으로 다스리니 만사가 형통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힘에 의한 통치는 오래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온 세계가 민주주의 사회를 맛이라도 보아 아는 현대에 총으로 밀어붙이건 숫자로 밀어붙이건 그런 강요하는 통치는 오래 가지 못한다.케임브리지 대학의 콜린 렌프루 교수는 유럽 역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을 뒤집었다.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학설은 고대 유럽은 정복자들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렌프루 박사는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무력에 의한 정복자들이 아니라 더 잘 살기를 바라면서 좋은
땅을 찾아갔던 평화로운 농업 이민들에 의하여 서양문명이 싹트고 유럽인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 발전이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농민들의 땀에 의한 것이라는 이 학설은 현대인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예수의 유명한 교훈 가운데 ‘8복’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이러한 사람은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기 때문에 역리(逆理)의 진리라고 불린다. 여기에서 예수는 가난한 자, 우는 자, 핍박을 받는 자, 화평케 하는 자, 온유한 자를 행복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보통 그런 인간들은 패배자로 낙인찍힌다. 가난보다는 부유층, 울음보다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 핍박 받는 쪽 보다는 지배하는 쪽, 화평보다는 싸워서 이기는 사람, 온유보다는 억세고 강한 자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멸공통일이니 흡수통일이니 하는 말들은 나를 우위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자세로는 평화도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국이 두 동강이 나고 64년이란 오랜 세월이 경과하였는데도 통일이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단된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남쪽이 북쪽보다 낫다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다. 피차가 동족이요 형제라고 정말 믿는다면 잘 사는 동기가 못사는 형제를 돕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도움을 ‘퍼주기’라는 못된 치욕적인 언사로 집안 분위기를 뒤집어엎는 것은 가족끼리 할 일이 아니다. 거북이의 재미있는 생태를 읽었다. 어떤 강압적인 수단으로도 거북이의 목을 뽑아낼 수는 없다고 한다. 유일한 방법은 거북이를 불 곁에 놓아두는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차차 몸이 더워지면 거북은 자연히 스스로 목을 내놓게 되어 있다. 그런 인내가 평화를 지향하는 슬기이다.

세상일은 억지로 안 된다. 바둑도 잘 두는 사람은 물 흘러가듯이 포석한다. 노골적으로 내 집을 만들려고 한다든지 무리하게 남을 공격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심리치료의 대가 칼 로저스 박사는 문제를 가진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4대 원칙을 말하였다. 첫째 솔직하고 순수하게 대할 것. 둘째 내 마음이 그 사람의 마음이 될 것. 셋째 그를 인정해 줄 것. 넷째 그를 신뢰할 것. 통일을 위한 대화도 이 원칙이 필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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