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어느 영세 납품업자의 비애

2009-08-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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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 1부 부장대우)

“이런 식이라면 이 불황에 살아남을 소규모 영세 납품업체들 하나도 없을 겁니다.” 퀸즈에서 식품 무역도매상을 운영하는 K사장이 던진 푸념이다.
그간 많이 개선되기는 했다지만 대형 업체와 납품업체 사이가 여전히 종속 관계로 묶여 있어 납품 업체들은 대형 업체들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한탄스럽다는 얘기였다.

K사장은 “때만 되면 압력이 가해오는 납품가 인하요구도 심각하지만, 신규 판로까지 대형 업체들이 나서 ‘이래라 저래라’며 방해하며 참견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K사장이 이처럼 울분을 토로하는 것은 요즘 자사가 오랫동안 납품해 온 A 대형식품 업체의 간섭으로 인해 거래처 확장이 꽉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K사장이 A사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B사의 매장 확대에 맞춰 새롭게 납품 하려하자 갑가기 통보를 해 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거래를 끊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K사장은 “수년간 이어지는 불황 때문에 고사 직전인 이 마당에 신규 판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도 난감하지만 이 같은 대형업체 경영 마인드가 더욱 허탈할 뿐”이라며 “대형 업체간에 벌어지는 경쟁 구도 속에 영세 납품업체들은 눈치 밥을 먹으며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더 나아가 이로 인해 대형업체와 납품업체의 종속관계는 더욱 고착화되고 결국 납품업체는 자생력없는 업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형 업체들만을 바라보고 사는 영세 납품업체들의 비애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K사장의 경우에서 보듯 대형업체들의 불합리한 경영 마인드 때문에 자신의 의지대로 신규 판로 개척도 못하는 사례는 이제는 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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