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넛지’, 그 지극한 배려

2009-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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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

‘한 발짝만 앞으로! 적극적인 자세가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 아무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그렇지? ‘아름다운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렇고말고!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위에는, 이처럼 애절한 읍소가 담긴 스티커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루에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머물다간 그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공항 측은 남자 화장실의 청결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궁리 끝에 소변기 안에 파리모형의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두었다고 한다. 그 곳에는 어떠한 경고나, 심지어 파리를 조준해서 쏘라는 권고 스티커 같은 것들은 붙여놓지 않았다.

아무튼 소변기 앞에 선 사수(?)들은 본능적인 동물적 감각의 작동으로, 자연스레 포착된 그 사냥감을 겨냥해 거침없는 사격을 가하게 되고, 연이은 사격에도 꿈쩍 않는 사냥감에 오기가 뻗쳐 온몸을 쥐어짜며 물고를 내려고했다. 결국 실탄은 소진되고 그 사냥감은 여전히 그곳에서 멀뚱한데,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예전에 비해 변기 밖으로 튀어나온 소변의 파편 양이 무려 80% 가량이나 줄어들었던 것이다.

또한 뉴질랜드에 있는 어느 호프집은 소변기 안에 9.11 뉴욕테러의 배후 주동자로 현상 수배된 빈 라덴의 얼굴 모형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는데, 그 후 그 화장실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즐겁게 하였고 암스테르담의 공항과 비슷한 혁혁한 전과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강압도 강력한 법규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즐겨 활용되었던 인센티브와 같은 유인책도 더 이상 아니라고 한다.

그 경이로운 무기는 바로 어떤 강제나, 인센티브 없이도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넛지’(nudge)이다. 앞에서 언급한 모형 스티커는 넛지의 좋은 사례들이다. 원래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용어이다.

또한 그 분야 학자들은 ‘넛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부드럽게 간섭하지만, 여전히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열려 있는 자유주의적 간섭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넛지는 비록 부드럽지만 그 힘은 강력하다고 한다.


이제 강제(채찍)나 인센티브(당근) 만능의 시대는 가고 인간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넛지가 활용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바야흐로 ‘부드러운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리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사회,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거칠고 팽팽한 세상을 피곤하게 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은 타인과의 부드러운 접촉과 관계유지를, 다정한 말과 친절한 행동을, 그리고 따뜻한 관심을 그리워하고 목말라 한다.

그런즉 넛지는 사람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한 부드러운 개입이며 자유주의적 간섭이라 정의 되지만, 나아가 그것은 사람에 대한 ‘지극한 배려’요, 자유의 시혜며 크게는 또 다른 자비의 발현이라 해도 되겠다.

박재욱
(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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