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상한 언어들

2009-07-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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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우리 한국 말에는 그 근원이 불분명한 이상한 말들이 유행하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할 때가 많다.일본의 식민통치 기간에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의 시련기를 겪었고 해방 이후는 영어의 홍수 속에서 정체불명의 외래어들이 난무하며 우리 언어를 혼란에 빠뜨렸다. 언어는 사회의 변천과 함께 새로히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좋아짐’의 변화가 아니고 ‘나빠짐’이 되고 저질화되어 간다면 우리 모두 반성하고 고쳐가야 할 것이다.
‘나일론(Nylon)’ 옷은 1960년대에 한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칙칙한 무명 옷만을 유일한 옷으로 입던 시절에 색색의 나일론 남방이나 치마 저고리는 산뜻하고 멋 스럽고 시원하게 보였다. 면 양말은 금새 구멍이 나서 꿰매기가 귀찮았으나 나일론 양말은 질기고 세탁도 간편해서 인기였다. 그러나 이런 옷과 양말은 통풍이 잘 되지 않아 피부 건강에 나쁘고 열에도 약해서 담배 불똥에도 쉽게 구멍이 나서 못 입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화학 섬유는 면과 함께 사용하
는 식으로 변형 되었다.

곁은 멀쩡하니 좋은 데 속으로는 별로 쓸모 없는 일이나 물건을 ‘나일론’ 같다는 표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일론 참외는 곁은 파랗게 덜 익은 것처럼 보여도 속은 노랗게 익어 맛 있는 과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한국 사회에서는 ‘빽’ 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쉽게 듣는다. 빽은 영어의 ‘Back(배후)’에서 온 말 일 것이다. 배경이 든든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신감 있게 할수 있고 성공도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상식과 법을 어기고 배후에서 은밀하게 뒷 봐주기를 한다면 ‘빽’이 없는 사람은 서럽다는 서민들의 탄식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꾸라’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의 이름이다. 곁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유행한 말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식민 통치자들에게 빌 붙어 동족을 배신하고 괴롭힌 자들에 대한 미움이 깊을 것이다. 곁은 우리 편이지만 속으로는 적을 편드는 사람을 ‘사꾸라’라 불렀다. ‘낙동강 오리 알’이라는 말이 있다. 시험에 떨어져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한국전쟁의 치열한 격전지인 낙동강 가에 알을 낳은 오리들의 모습을 연상 시키기도 한다.개인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은밀하게 뇌물 공세나 로비 활동을 펼 치는 것을 ‘사바사바’한다고 부른다. 다른 이에게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바른 생활인의 자세다. 그러나 직장의 상사에게 지나치게 아부하는 것은 ‘사바사바’ 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의 한국 드라마에서도 ‘낙하산’ 이라는 말이 흔하게 나온다.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실력과 능력을 평가 받고 앞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정실과 내부 인사로 뒷문으로 들어 온 사람들을 비꼬아 부르기를 ‘낙하산’ 이라 한다. 쌀이나 옥수수 등으로 뻥 튀기 한것은 어린 시절의 간식거리 였다. 뻥 튀기는 열로서 곡식을 부풀린 것이다. 아이들이 ‘뻥’ 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거짓 말이나 공갈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말은 옮겨가며 과장되고 부풀어지고 본 뜻을 잃어버리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깡통 차다’ 는 말은 빈털털이 거지 신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깡통은 쉽게 깨지지 않고 거지들에게 유용한 재산 목록이 되었다. 여러 생활 용품을 만들어쓰던 깡통문화는 한국이 근대화로 가는 길목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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