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르침의 결과

2009-07-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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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 (뉴욕신광교회 목사)

요사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매우 식상할 때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의 사고가 구시대적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이 상식을 따라가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세상을 경험한 자로서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바르게 가르치는 삶이 앞서야 할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배우는 것이 삶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사를 정리해 보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그들의 모든 사고를 좌우하는 것을 볼 때 무형이든 유형이든 가르치는 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헤아리게 된다. 가정을 통해서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인격은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에서 인격의 틀이 형성되어지고, 부모의 삶에서 저들의 도덕정신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가장 귀한 선생이며 아울러 책임자이다. 자녀들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다음으로는 학교라는 틀이다. 거기서는 지식과 사고의 길을 훈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몸에 익혔느냐가 그들의 사회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과연 학교 선생님들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앞에 서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언제인가 지존파의 두목격인 한 사람의 마지막 증언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가르치는 자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내용인즉 하루는 미술시간에 자기는 크레용을 가지고 오지를 못했다. 선생님은 야단을 쳤다. 왜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실로 그는 돈이 없어 크레용을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부끄러워 그 말을 못하는 학생의 심정을 무시한 선생은 돈이 없으면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부터 남의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여 무서운 죄악의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직장이나 단체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그 경험을 통해서 사회의 룰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어느 직장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며 어떤 종교에 몸을 담는가가 매우 중요한 일로 남게 된다. 특히 종교를 통해서 얻은 경험은 사람의 됨됨이를 다듬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 때문에 마음에는 없으면서 그런 척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늬만 무엇인 것 같지만 실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속고 남도 속아 결국은 서로에게 무서운 상처와 사회의 혼란을 가중하고 아무도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는 무섭게 병들어가고 있다.

특별히 한국에는 정치적인 선생이 없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도는 배운 일이 없는데 누구를 모델로 해서 큰 정치를 하려는 사람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참으로 국민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무늬만 갖추었지 실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았어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정치는 국민을 위한, 또 국민에 의한 것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정이나, 학교나, 단체들이 이타적인 마음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에 바탕을 두어서 너나할 것 없이 자기 자신에 빠져있다. 남을 위한 삶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인들 양보나 이해가 있을 리가 없다. 가르침의 결과가 이렇게 크고 무섭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서라도 바른 가르침을 보여 내 자신부터 희생을 보이며 살자.내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사는 삶을 배우게 하자.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팔을 저으며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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