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말이 오면

2009-07-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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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교도소 심리학자)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종말론이라 하고 그것의 서양어는 ‘에스카토로지’라고 한다. 여기의 희랍어 어원 ‘에스카타’는 땅위의 마지막 혹은 세상 인간존재의 마지막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러한 종말을 가져오는 원 출처는 하느님, 천사, 조상, 악령 등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들이라는 관념도 여기엔 딸려 있다. 종말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아포칼립스’의 어원적인 뜻은 종말을 알리는 신의 특별한 ‘계시’라고 되어 있다.

이 때의 ‘계시’는 매우 특수하고 비밀적이어서 계시라는 말과 함께 ‘묵시’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위의 ‘에스카타’와는 좀 달리 ‘아포칼립스’의 종말에는 모든 악은 소멸되고 선이 회복된다는 내용이 함유되어 있다. 종말사상은 말할 것도 없이 현세 인간세상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을 표시한다. 세상은 어둡고 더럽고 악하다, 이대로의 세상은 망한다 끝난다는 식의 관념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 꼭 깔려있는 관념중의 하나이다. 수원이나 산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 세상과 등지고 사는 사람, 자살자, 총기와 살생폭탄물을 무장해놓고 있는 사람, 이 사람들은 다 적든 크든 종말론자
들이다.


서양역사에는 크게 두 종류의 종말론이 있었다고 학자는 시사한다. ‘묵시적’종말론이 그 하나인데 이것은 신의 최후심판이 불시에 임하여 불과 천재지변으로 세상의 종말이 하루아침에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때에 신을 믿는 거룩한 백성은 신과 함께 남아서 영원한 나라를 이룬다고 한다. 이 묵시적 종말론의 대표적인 예는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종말론은 ‘지혜적’종말론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의 ‘지혜’는 라틴어의 ‘사피엔
치아’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지혜적 종말론자는 평상시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종말에 가까운 시간이라고 믿으며 하느님이나 신의 지시를 최대한으로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묵시적 종말론자는 경전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지혜적 종말론자는 그것을 내용중심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묵시적 종말론에서와 같이 종말론은 기독교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 기독교가 그렇게 포퓰러한 이유는 숭미사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필자는 품고 있다.

기독교까지 포함해서 모든 종교와 그 신이 가르치는 근본내용에는 지극히 유사한 데가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 내용은 분명히 다음 네 가지이다. (1)깨끗하게 살라 (2)도적질하지 말라 (3)옆사람을 해치거나 죽이지 말라 (4)형편이 어려운 자를 도와 주라 이다. 지구의 역사에는 창조과학에도 불구하고 공룡의 멸종이라든지 빙하시대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다. 문명발달에 의한 환경오염은 생태계를 점차로 변화시키며 거기 따른 생물 멸종의 수는 현저하게 늘어간다고 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나라의 핵폭탄의 분량은 인간을 몰살하고도 남는
다. 인류의 종말은 신이 가져오는 건지 아닌지는 해석하기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종말이 정말로 온다면 기독교인도 죽고 한국인도 죽고 미국인도 다 죽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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