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드슨 강의 불꽃놀이

2009-07-16 (목)
크게 작게
이경희(교육가/수필가)

지난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 233주년이 되는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제1의 도시 뉴욕에서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대형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우리가 뉴저지 버겐카운티에서 살 때는 놀우드 타운에서 실시하는 물꽃놀이에 해마다 참석하여 즐겼고 팰리세이드 팍으로 이사 와서는 에지워터의 높은 지역에서 맨하탄 쪽을 바라보며 불꽃놀이를 즐기다가 불꽃놀이가 심드렁해진 지가 벌써 몇년 되었나 싶다.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들 가족 전 식구가 불꽃놀이에 나서게 되었다. 금년은 영국의 항해사 헨리 허드슨(Henry Hudson, 1550~1611)이 허드슨 강을 발견한 지(그의 이름을 따서 허드슨 강이라고 함) 400년이 되는 해여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스트 리버가 아닌 맨하탄 서쪽 강변에서 대규모로 실시됐다. 매년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를 주최해온 Macy’s는 지난 해에는 이스트 리버에서 4대의 바지선(Barges)으로부터 3만개의 폭죽을 쏘아 올렸지만, 이번에는 웨스트 사이드 24가 부터 50가 사이(뉴저지 호보켄 근처) 허드슨 강에 6대의 바지선을 띄어 총 4만개의 폭죽을 26분간 지속적으로 쏘아 올렸던 것이다. 전무후무한 불꽃놀이의 감동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바다 속에 끼어서 카운트 다운의 시간 9시20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마자 세 곳에서 동시에 쏘아 올리는 폭죽이 26분간 쉬지 않고 터지는데 그 휘황찬란한 광경과 굉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빨강, 하양, 노랑, 파랑이 온 하늘을 수 놓으며 황홀하게 번져나갔고 폭죽이 터지는 순간 순간마다 나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모든 불순물이 함께 터져 나오는 느낌을 느꼈다. 미움, 원망, 갈등, 근심, 걱정까지 다 토해내는 이 정화 작용이 모든 사람들을 그토록 열광케 하며 그들을 압도하는 이유가 이닐까. 여기 저기에서 가벼운 탄성이 울려 나왔다.

이것은 분명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거대한 축제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중들이 한군데 모여 오직 한 마음으로 이 나라 미국을 마음속으로 연호하는 참으로 훌륭한 축제였다. 그리고 이 축제는 그야말로 멋들어진 국민의 1회성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기도 했다. 장시간 동안 깨금발을 딛기도 하고 엄마 아빠 품속에 얼굴을 파묻기도 하며 구경했던 어린 손자 손녀의 얼굴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기에 새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돌아오는 길도 문제였다. 길가 언덕에다 파킹해 놓은 차를 돌려 트레픽 사이를 뚫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미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꼭 의미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시행하고 있다. 특별히 높이 살만한 일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피흘려 싸워 이긴 독립을 그냥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축제로까지 승화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미국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미국 시민으로서 그 속에 살면서 이 어려운 경제난을 한 걸음 한 걸음 이겨나가고 있는 우리도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