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존중하기, 격려하기, 그리고 기다리기

2009-07-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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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연(상담소 상담사/연극치료사)

뉴욕가정상담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호돌이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는 매 학기 마지막 금요일에 그동안의 활동을 발표하고 공연하는 Final Event 행사가 있다. 이 행사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올해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낸다. 올해 행사는 지난 주 금요일날 진행되었다. 연극반에선 “Wizard of Oz(오즈의 마법사)를 공연하였다. 연습할 땐 그렇게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나름 진지하게 잘
해주었다.

연극반은 8명 혹은 9명의 아이들로 구성된다. 기억에 남는 모든 친구들 중 한명이 7살 J이다. J엄마는 J가 연극반을 선택한 것에 의아하고 놀랬다고 한다. 연극반에선 자신의 느낌을 몸동작과 소리로 표현하도록 격려되어 진다. 한 친구가 동작을 하면 다른 친구들은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J는 표현하는 것이 쑥스러워 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다른 친구가 하는 것만 쳐다보는 것이다. 해보라고 격려라도 할라치면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가만 서 있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 준비가 되면 얘기해, J가 하고 싶을 땐 알려줘” 라고 말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격려가 지나쳐 강요가 되면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J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J가 말을 했다. 난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 후에는 동물을 연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늘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바라만 보던 J가 자신이 맡은 동물을 성실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공연날, 평상 시 연습할 때 자신만만하던 친구들은 오히려 무대 위에서 조금 위축되면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오히려 늘 쑥스러워하고 조용하던 J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너무나 잘 해주었다. 그 연극을 함께 준비했던 TA(Teaching Assistant)선생님도 나도 놀랐다.

J는 2009년도 연극반에 다시 등록하고 친구들과 말도 잘 하고 잘 어울렸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J는 오즈의 마법사 인물 중에서 강아지 토토 역할을 연기했다. 본인이 그 역할을 하고 싶어 했고 나는 J가 원하는 토토를 만들 수 있도록 격려했다. J는 지난 번 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연기했다. 나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어머니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애가 말이 없어 속상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해야 되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잘 못해서 속이 터진다.”하는 말씀을 많이 듣는다. 몇몇 어머니들은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아이가 그럴 때마다 강하게 “Push”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애가 점점 더 위축되는 것 같고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서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왜 속상하지 않겠는가! 내 아이가 자기감정과 생각을 또박 또박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아이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표현하는 것이 본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자체를 일단 존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자.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 J는 멀리 이사를 가기 때문에 이번 가을 연극반에는 볼 수가 없다. 이번 연극반에는 어떤 녀석들이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J를 만날 것이라는 걸 안다. J를 통해서 존중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기다리기를 연습할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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