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여름, 그 뜨거웠던 함성

2009-07-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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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업(필라델피아)

박지성선수가 2010월드컵 아세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서 2002년 월드컵 경기가 떠올랐다. 마침 히딩크 감독이 서울을 방문 박지성 선수와 반갑게 만나는 뉴스를 보고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우리 민족사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생하게 회상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세계의 강호들을 만나 승승장구로 정상을 향하여 숨가쁜 질주가 멎을 때
까지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의 해일 같은 함성은 4,700만의 가슴에 꽃보다 붉고 피보다 더 뜨거운 메아리로 남았다. 사람이 사는 거리마다 넘쳐나는 환희의 물결은 마침내 용광로 같이 우리들의 가슴에 끓어올랐고,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인의 열정과 불굴의 기상을 각인시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끈질긴 집념과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23명의 몸값이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한 선수의 몸값에도 못 미치는 한국축구의 연약한 현실을 오히려 승리의 원동력으로 삼고 과학적이고 치밀한 목표설정으로 축구의 3박자라고 할 수 있는 ‘기본기와 체력, 정신력’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봇물 터지듯 거리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있는 동포들에게 넘쳐나던 그 환희와 감동은 48년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우리가 1년 6개월만에 월드컵 4강에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분열과 분단,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병든 기성세대의 패거
리 문화의 허상을 허물고 우리겨레가 ‘하나되는 기쁨’을 유사이래 처음으로 맛보는 감격과 환희 때문이었다.


이 환희와 감격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로놓인 일체의 벽을 넘어, 승자와 패자가 함께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관용과 헌신으로 승화되었으니 우리 민족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진 하늘의 성사였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 주역은 이 시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었다.
피와 땀과 투지로 싸웠던 우리 선수들이 그러했고 그들의 동지가 되었던 ‘붉은 악마’ 응원단은 돌이켜보면 이 시대 우리의 아들 딸들이 신흥공업국가로 발돋움하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기성세대의 여한에 제물이 되어, 태어나면서부터 조련사의 고삐에 끌려가듯 경쟁의 제물이 된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우리의 부모들과 기성세대는 ‘자유의 해방’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정과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 마저 그들이 거처할 시간과 장소는 늘 폭발물 저장소처럼 감시의 대상으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들꽃처럼 자생적으로 피어나 들풀처럼 번지던 ‘붉은 악마’의 뜨거운 함성은 이제 그들의 문화에 깃든 창조주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눈여겨 보도록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때로는 돌개바람처럼, 때로는 쏟아지는 폭풍우처럼 정체되지 않는 그들의 문화 속에 생명의 영성을 찾아,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더없이 소중한 우리들의 임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2010월드컵에도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라는 함성이 터져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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