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혀로 쓰는 시인

2009-06-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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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목회학 박사

시인 노차돌. 그는 혀로 시를 쓴다. 어떻게 혀로 시를 쓸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정말 혀로 시를 쓴다. 이틀 전 공중파를 타고 방송된 노차돌씨의 사연은 정말 사지가 정상인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때 발병된 뇌 병변으로 뇌성마비 1급 지체장애인이 된 노차돌씨는 지금 38세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입으로 막대를 물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시를 써왔던 노차돌 시인. 그는 점점 몸이 마비되고 손과 발이 뒤 틀려 이젠 자유로운 건 혀 밖에 없다. 그래서 혀끝을 사용해 컴퓨터 자판기의 한 자 한 자를 눌러 시를 쓰는 것이다.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그는 한 달을 생각하고 쓴다 한다.

동해바다가 있는 강원도 거진에서 태어난 노 시인은 학교라곤 다녀보지를 못했다. 고등학생에게 배우며 독학으로 한글을 깨쳤다. 그는 18살이 되던 해 첫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시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의 첫 사랑은 이별로 끝났으리라. 사랑은 떠나갔지만 그는 시인이 되어 모두를 위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2007년 장애인 문학지인 ‘솟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써 온 시만 해도 180편(미발표작 50편)이나 된다. 그는 “제가 마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아 시로 표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제 시를 보고 아직 세상에는 사랑이 존재한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그의 홈페이지(www.lovemi7.net)안에 있는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제목: 사랑이란. “이 세상엔 배울 것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사랑만 잘 배우면 세상 사는데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누가 사랑한다고 하면 왜 사랑 하냐구 묻지 마라. 그렇게 물을면 대답 할 말이 없다. 사랑하는 것은 이유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위 부분 중 ‘물을면’은 그가 혀로 쓴 그대로 적은 것이다. 또 그의 시 ‘난 행복하다’를 소개한다. “세상의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없어도 자기가 무슨 큰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웃는다. 한달에 한번도 외출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면 아마 그런 소린 못 할거다. 가만 보면 나도 참으로 행복한 것 같다.” 한국에선 지난달 방영된 TV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용기와 감사의 댓글을 그의 홈페이지에 달았다. 그 중 몇 개를 적어본다. “힘 내세요.” “노차돌 시인의 모습과 글을 보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병든 영혼들을 당신의 아름다운 시로 치유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혀로 쓰는 시인 정말 대단하네요. 저 티비보고 많이 울었어요”.

“차돌님에 비하면 전 아주 건강한 사람인데. 이런데도 세상에 불만이 참 많은데. 차돌님을 보고 제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해 지네요.” “차돌님의 건강한 정신을 본받고 싶구요. 지금까지 행복이 넘쳐나도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불평만하고 살아온 게 부끄럽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 행복함을 갖고 감사할 줄 하는 당신! 정말 멋지시네요”.“지금의 저에게 감사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이렇게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 차돌아저씨에게 감사해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9월 뇌졸중으로 좌측편 마비가 왔습니다. 한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쩔룩거리는 걸음을 걸으며, 내 인생에 대한 원망으로 지내던 내가 아주 매운 회초리가 되었습니다. 차돌님 저도 이제 행복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혀로 시를 쓰는 사람이 있기에 그렇다. 사지가 정상인 사람도 시를 쓰기 힘든데. 그의 홈페이지 안에는 ‘사랑이란’ 제목의 글이 많이 올라 있다. 노차돌 시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그의 뒤에서 38년 동안 속으로만 울어왔던 그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그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팔다리와 온 몸이 정상이면서도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노차돌 시인이 혀를 내밀어 자판기를 한 자 한 자 쳐 나가며 “그래도 행복하다”고 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가까이, 그리고 작은 것에 있다. 우선 내 몸이 정상이라는 것 하나부터가 행복중의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장애에 비해 정신적 장애를 많이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차돌 시인은 많은 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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