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최고령 졸업생

2009-06-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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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대형 빌보드 사진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주름진 얼굴, 90세의 나이로 대학원을 졸업한 로라 잔스튼 할머니다. 샘 휴스턴 주립대학에서 스패니시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로라 할머니는 “아무렴,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내 얼굴이 아주 늙었다는 걸 알고 있지. 그러나 내 꿈은 늙지 않았다오”라고 말한다. 빌보드 광고판에는 사각모자와 졸업가운을 입은 로라 할머니의 사진 아래 이렇게 써놓았다. ‘꿈꾸어라. 그리고 내디뎌라!’

95세의 놀라 옥스 할머니는 포트헤이스 주립대를 졸업했다. “처음엔 학생들이 혹시 나를 내다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우. 하지만 아직도 잘 어울려 지내고 있잖아.” 같은 과의 20세 학생 레널드 호이치스는 “그래요. 처음 할머니를 보았을 때는 젊은이들이랑 섞여 보려고 바보 같은 짓을 다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요?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걸요. 같이 브레이크 댄스를 출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하고 말한다.
디트로이트 사우스웨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한 존 로처 할아버지도 90세이다. 경제 공황기에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존 할아버지는 곧이어 2차 대전 참전 후, 제너럴모터스에 근무하다가 70년 만에 같은 학교로 복학, 마침내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남편의 팔짱을 끼고 졸업식에 참석한 83세 부인 베티 로처 할머니는 “평생 내 남편이 이렇게 멋지게 보인 적은 없었다”며 자랑스러운 남편의 뺨에 키스를 했다.

하버드대학 사상 최고령 졸업생인 메리 파라노 할머니는 89세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2 때 학업을 포기했다가 고등학교에 다시 진학한 것이 69세. 20년 만에 하버드대학 평생교육원의 크레딧 과정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보청기에 감사한다”고 말해 주변에 웃음을 주기도 했던 메리 할머니는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타이완의 차오 무허 할아버지는 며칠 전 96세(1912년 생) 나이로 타이완 난화대학의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체력은 젊은이들보다 떨어지겠지만 아직 기억력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도 시험 때면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고 잘 외워지지 않는 내용은 단어장에 깨알 글씨로 요약을 해서 들고 다니며 한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82세의 이한구 할아버지가 올해 서울대를 졸업해 학사모를 썼다. 6.25전쟁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63년 만에 마치게 된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에릭 에릭슨은 나이가 들수록 성장의 지평이 넓어진다고 말한다. 즉 성장은 젊었을 때 최고 정점에 이르다가 꺾여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젊은 시절에 성장의 계단을 올랐다가 맨 꼭대기에서 이르렀다 싶은 순간 쇠퇴기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점에는 더더욱 광활해진 새 지평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끝없는 발전의 과정 속에 살아가며 육체는 어느 날 쇠하여도 정신적 생명에는 끝이 없다.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이 ‘생산적 즐거움’이다. 나이라는 숫자에 신경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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