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해

2009-06-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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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다시금 정치에 삶의 진정성이 내재하는가 하는 물음 앞에 아테네의 한복판에서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인류사에 영원한 빛이 된 그의 위대한 정치철학과 역사에 남긴 교훈이 드라마틱한 죽음 속에 투영되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 유언에 가까운 그의 마지막 진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씌여진 당시의 죄명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괴변으로 현혹하여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스승에 대한 너무도 부당하고도 억울한 분노할만한 죄명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도망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배를 들었다.

그로 인해 도덕성으로 무장한 지혜로운 자가 정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정치철학은 가장 발달된 민주정치제도를 구현하던 아테네에서 다시금 현대 민주주의를 향한 싹을 틔우게 된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국가구성의 기본 요건이며 국가질서 유지를 위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만든 법이라면 자신의 정당성을 규명하기 위해 도피하지 말고 시민으로써 기꺼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배를 든 그의 행위는 법을 준수하려는 의지와 진리에 대한 규명사이에서 국가를 위한 법을 택한 것이다. 법은 당대의 사회규범이고 진리란 역사가 분별하는 것이니 올바른 평가는 훗날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결하고도 짧은 문장. 나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 할 것이고 슬퍼하거나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통해 한국적 토양의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투사로의 고단한 삶을 통해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에 맞서 버겁게 버텼던 그의 정치적 소신은 5년 동안 정치 실험무대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둔 것이 없는 듯하다. 권위주의와 지역정치 타파를 외쳤던 그의 행보는 정치경험이 부족한 386세대의 대거 국회진출과 국정전반에 걸친 아마추어적인 정치로 극단적인 평가의 잣대위에 올려졌다. 수구 언론과 보수층의 벽을 깨 화합을 바탕으로 한 안정되고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기에도 저력은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이상들이 앞으로 한국적 민주주의 발달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기폭제가 된다면 한국정치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무현 정부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캐낸 그의 비리라는 것이 정치적 목적이 배제된 오랜 세월 친분관계에 있던 이들로부터 개인용도의 뇌물수수이다. 미국은 공직자에 대한 윤리강령과 법적 요건들이 제도화돼 있지만 한국정치는 아직도 제대로 제도화되지 않았다. 퇴임 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연구하겠다는 그에게 촛불시위 배후세력으로 지목하는 등 정치보복 적 성격의 과도한 수사는 역사적 비극을 낳은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386세대들은 호기를
만난 듯 다시금 무서운 힘으로 결집하여 현 정부 타도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나섰던 한나라당의 기세는 당시 좌파 세력이 한국정치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수구언론 조 중 동이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이제 민주당은 역으로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마저 부당한 수사로 벼랑 끝으로 내몰았으니 책임지라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떨어진 지지율에 반등하여 민주당을 등에 업고 차기대권과 총선의 승리를 향한 야심찬 행보를 준비하기에도 분주하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명 현재의 사태를 짐작하고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마지막 유언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원망하지 말라고 한 이들은 정치적으로 그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가 한국정치의 성숙한 모습을 보아야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을 남겨진 이들은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도 기득권에 도전하는 자들도 그에 부유하는 천박한 언론도 화합과 상생의 한국적 민주주의 정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한 시대의 운명을 끌고 갔던 이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예의이며 자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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