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과의 동침… 결혼안에서의 강간

2009-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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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숙 (뉴욕가정상담소 소장)

며칠전 신문에 “아내 겁탈해 달라” 라는 인터넷 광고를 내고 실제로 모르는 남성을 시켜 아내에게 성폭행을 시키고 아내가 폭행당하는 과정을 몰래 숨어본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남성의 기사를 읽고 한동안 기가 막혀 멍한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많은 사람들은 강간이라고 하면, 밤늦게 젊은 여성들이 어두운 길을 다니다가 낯선 남성(들)에게 당하는 못된 짓이라고만 연상하고, 부모들은 딸들에게 밤늦게 다니지 말고 몸처신(?)을 잘 하라고 당부하곤 한다. 허나, 이것은 하나의 신화(myth)에 불과하다. 사실 통계적으로 보았을때, 강간(rape)의 가해자는 주로 주변의 아는 사람일 경우가 73%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혼안에서도 강간은 이루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spousal rape’ 혹은 ‘marital rape’ 이라고 하는데, 이는 결혼을 해서 합법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성관계를 파트너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혹은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때 일어날 결과 (예를 들면, 생활비를 주지 않고, 안 좋은 일을 친정집에 알린다던가, 한국으로 추방시켜 자식들을 평생
못보게 한다던가)가 두려워 협박과 통제된 상황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강간이라고 보겠다. 이런 강간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고 볼수 있다. 한 미국 연구조사 (Diana Russell, 1978)에 의하면, 14%의 응답자가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그중의 절반이 그런 결혼 생활속의 강간이 20번 넘게 반복되었다고 밝혔다. 대부분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신감, 존재에 대한 상실감, 두려움, 무기력함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그 심리 치료과정이 휠씬 오래 걸린다.


이에 미국에서는 결혼안에서의 강간도 엄격하게 범죄(crime)로 간주하고 있다. 처음으로 1979년에 메세추세츠 주에서 결혼안의 강간건을 가지고 소송, 유죄로 판결했는가 하면, 1981년도 미네소타주가 최초로 결혼안에서 강간(marital rape)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했다. 미국 여러 주(州)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이 법적으로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있는 나이를 14~18세로 정하고 뉴욕주 형법에서는 17세 이상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프리카 몇 부족은 강간을 재산권 침해로 보고 무거운 벌금형을 내리는데, 이는 여성을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혼,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결코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관계로 이루어질 수 없다. 결혼제도가 남편은 당연히 아내와(동의여부의 상관없이)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pass)와 동일하다는 성차별주의(sexism)적 생
각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결혼안에서 죽음의 위협이나 신체에 즉시 해를 입힐 만한 위협, 사기나 속임수, 또는 남편인 체하면서 성교를 강요할 때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규정, 법적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생활이든지 연예 관계에 있어서 통제와 소유관계가 아닌, 서로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성관계를 하나의 성(聖)스러운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사고방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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