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성, 철학, 종교가 상실된 나라

2009-06-12 (금)
크게 작게
김종환 (목사)

얼마 전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인들이 장례를 치렀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공평하고 평등한 것인데... 고인의 뜻을 질문하지도 않고 매머드 장례식을 치렀다. 여기서도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죽음의 책임이 인간관계에서 온 것이라면 인과적인 것으로 모든 문상객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고, 실존적인 입장이라면 죽은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다.

오늘의 종교는 죽음 앞에 자신이 없어 군중들의 눈치를 보고, ‘인권’이니, ‘소통’이니, 하는 어용 교수들의 말로 메시지를 내놓는다. 한국교회는 성경의 언어로 성경을 밝힐 힘을 상실했다. 천주교 정의사제단은 불교 장례식에 안치된 시체를 ‘예수’라고 했다. 이런 절제 없는 말들은 기독교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어떤 이는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조선 5백년의 성리학(性理學)이 나라를 분열시켰다’고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된 말들의 근원을 찾기 위하여 우리가 겪은 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1903년 조선에 들어온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동경제대 한문과를 나와 일본의 우월성과 진화론을 신봉한 자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내무국과 교육국에 48년간 자문역을 하는 중에 경성제대(현재의 서울대)를 세운 핵심인물이다. 그는 20년간 조선의 언어, 역사, 문학, 유교, 불교를 탐구한 후 조선의 정신문화를 말살시키는 작업으로 조선인 황의돈(黃義敦)을 시켜 조선을 비하하는
식민사관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신편역사」를 출간하게 했다. 이와 동시에 총독부는 일본 역사서와 상반된 단군관계고전, 역사서, 인물전, 등을 불온서적으로 정하고 첫해(1923)에 51종 20여만 권을 압수했다.

‘다카하시’는 2차로 대학교제 ‘조선사’를 편수하는 동시에 매년 몰수한 책을 15년간 소각 처분하고 희귀본은 황실문고에 이송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것이 거의 없다. ‘다카하시’의 사주를 받은 막스론자(Marxist) 김태준(金台俊)은 진화론의 입장에서 창조론을 원시신앙의 열등한 것으로 이론화한 것과, 신사참배를 합리화하고 기독교를 와해시킨 공로로 경성제대 교수로 임명됐다.이러한 식민지 과정에서 조상의 것을 상실한 부끄러움도 모르고 서울대 교수 백여 명이 막스론에 휘둘려 정부를 비방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다니 통탄할 일이다. 오늘의 지식인들이 조상의 가르침에서 철학이 시작되고 미래가 보이는 것을 모르는 것은 고려 말기의 현상과 다를 것이 없다.

고려 말기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정권에만 몰두해 이성을 잃고 눈이 어두웠다. 이러한 문제를 먼저 보고 책임을 다한 사람이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이다. 그는 전국에 조상의 가르침과 학문을 계승하는 ‘향교’를 세워 선비들에게 자신(性)을 알고 자연(物, 氣) 뒤에 가려진 이(理)를 연구하는 ‘성리학’에 주력하게 했다.당시 성균관 대사성 ‘이색’과 석학들은 정몽주의 인격과 애국심은 알아도 그의 형이상학적인 강의와 현세를 보는 강론에 모두가 의아해 했으나, 후에 원나라에서 발행한 성리학 주해(四書通)를 받아본 이색, ‘이숭인’, ‘길재’ 등 당대의 선비들은 앞서보는 그를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라고 격찬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도 그를 사림의 시조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자신을 보는 정신이 숨겨진 진리를 읽고 미래의 줄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에 조상의 뜻을 상실한 공허한 지식인들과 막스론에 휘둘리고 있는 군중들은 뿌리 없이 들떠 있는 집단으로 향방을 알지 못한다.이성으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을 판단할 때 우리의 역사가 보이고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종교계가 먼저 맴머드를 섬기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