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

2009-06-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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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교도소 심리학자)

우리는 거의 무심코 섹스를 하는 사이면 사랑을 하는 사이라고 간주한다. 섹스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을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랑의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을 보통 ‘융합주의’라고 말한다. 즉 사랑의 핵심적인 요소 하나는 두 사랑하는 사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융합하여 하나가 되는데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푸롬은 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독립심도 생기지만 동시에 소외감과 불안감과 외로움도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외로움을 해결하는 길은 타인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면서도 동시에 둘인 채로 남는다고 하였다. 그는 이것을 사랑의 파라독스라고 불렀다.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은 상대방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심정을 갖는다. 섹스가 갖고있는 특성 때문에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은 마치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순간적인 환상에 해당하는 상황이며 두 사람은 두 사람으로 남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섹스를 하고나서 싸우기도 하고 둘이 대천지 원수가 되는 사례는 그래서라고 한다. 사랑이 적개심으로 변하는 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신경질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고전문학의 사랑의 걸작품에는 사랑의 실패와 참담한 비극이 담겨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웰은 사람들이 섹스의 매력을 갖는 것은 종족의 번식을 위하여 자연이 부리는 요술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섹스의 매력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라고 말했다. 섹스에 쾌락과 욕망이 따르는 한 섹스에 실패는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러나 사랑에는 많은 비애와 실패가 따르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상정인 것같다. 따라서 사랑의 핵심을 상대와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융합주의라고 함은 사랑과 섹스를 지나치게 연결지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에서는 사랑의 핵심은 상대의 복지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이는 말 대신에 정(情)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정 자는 생각할 정 자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를 생각해 준다는 뜻이다. 섹스의 선택은 자율성에서 오고 상대를 걱정하는 것도 자율성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어도 서로 자율성은 잃지 않는다는 뜻이 여기에 있지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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