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방황하는 사람들

2009-06-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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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자고 나면 한국이고 여기고 한국인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줄을 잇는다. 이것은 지금 우리사회가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들이 하루 하루 살고는 있지만 모두가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 각자가 원하는 모습이나 이상은 있는데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정신적인 지도자, 즉 롤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점점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달라이 라마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가 있으면 위기가 오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고비를 이기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일종의 횃불같은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없다.

한국의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왜 500만명이나 되는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그렇게 애통해 한 것인가. 그것은 그가 언제나 힘없는 자의 편에 있었고 약자도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이상과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지금 그와 같이 긍정적으로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사람이 누가 또 있는가. 이 부분은 뇌물수수 사건과는 본질이 다른 얘기다.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로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은 강자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커뮤니티도, 후세도 자꾸 키워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하다. 한인사회의 문제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고 한인들을 확고하게 이끌고 나갈 인재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이나 여기나 우리는 나보다 좀 잘난 사람이 있으면 잘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꺾어버리려고 한다. 기업 같은 데서도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어느 정도 써먹고는 중도에 잘라 버리기 일쑤다. 우리 자체가 인물을 키우려고 들지 않는데 이런 속에서 어떻게 지도자가 나오겠는가. 역사를 보면 위대한 리더, 잘못된 지도자의 만남으로 역사는 항상 얽히고 설키고 해왔다. 한 사
람의 리더에 의해 그 나라의 역사가 바뀌고 세계사가 바뀌어 왔다. 그런 것을 볼 때 인간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결국 우리는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역사 속의 한 사람으로써 우리가 죽고 나도 세상은 돌아가고 인간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간다.

차이가 있다면 문명의 발달로 고대에는 먹이를 위해 약육강식으로 하던 전쟁을 이제는 무역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전쟁을 하는 점이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될지 우리는 모른다. 인간이 지구상에 있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인 채 세계 역사는 또 그 때 그때 새로운 지도자들에 의해 바뀌게 될 것이다. 교황 바오로 2세와 고르바초프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진 동구권의 붕괴도 이러한 예 중의 하나다.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민사회에서 한인사회가 단결이 안 되는 이유는 그다지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이다. 일단 단결의 구심점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다. 이는 한인회나 봉사기관들이 해야 하는데 이들이 모두 자체 기관에만 치중하다 보니 단결이 잘 안 된다. 하다못해 교회끼리도 단결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커뮤니티의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사회가 힘을 모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의 경우 자기네 회당 안에 갖고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모든 커뮤니티에 관계된 프로그램을 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700개나 넘는 교회가 뉴욕에 있어도 커뮤니티와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네만을 위한 곳으로 폐쇄돼 있다. 한인들이 유독 교회를 열심히 찾는 이유는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더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한인들은 강한 뿌리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기어코 한국교회를 찾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단결은 죽어도 안 된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한다. 이를 교회가 외면한다면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 목숨을 끊는 한
인들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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