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상동의 카메라 토크 - 흔들리는 세상

2009-06-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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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한다. 아마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것에 대한 비유인 것 같다.

세상을 살아보니 정말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학창시절 등교 길 만원 버스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눌려 있다가 친절한(?) 버스 기사님이 손님들을 한쪽으로 잘 다져 주기 위한 그 공포의 S자 커브 흔들림. 혹시 옆에 예쁜 여학생이 함께 서있을 때면 공포의 흔들림은 금세 기다려지는 흔들림이 되었고 어느 날이던가 돌머리 같은 친구 녀석의 머리에 받쳐 멀쩡하던 이가 흔들려 치과에 다니며 고생하고, 교과 과목에 한자를 넣는다 뺀다 흔들리더니, 대학 입시정책이 흔들리고 갖가지 정부의 정책도 흔들린다. 직장에 취직하니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직속상사를 만나 업무마다 사사건건 부딪쳐 승진도 늦어졌던, 여러 가지 흔들림의 기억 속에 살다가 미국 땅으로 이민을 오니, 세상에… 땅까지 흔들려 노스리지 지진의 최고 피해자가 된다. 어차피 흔들림과는 인연을 맺고 살아야 할 운명인가 보다. 지금도 카메라를 들면 그 흔들림과의 싸움은 여전하고 아마 카메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의 문제점 일 것이다.

가깝게 지내는 분들 몇 분이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사진 공개의 시간을 가지며 여행담을 털어놓는다. 즐거운 시간들을 담아온 사진에 흔들린 사진이 너무 많아 보는 순간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옆에 있던 분이 사진들이 많이 흔들린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건네자 흔들리는 배안에서 찍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무슨 조각배를 타고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신 것도 아닐 텐데…


많은 분들의 사진에서 흔들리는 사진들을 본다.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훨씬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일 텐데 어렵사리 담아온 추억의 조각들이 흔들림으로 인해 아쉬움을 남긴다.

사진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지만 그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초점이다. 가끔 의미도 초점도 맞지 않는 사진들이 작가의 의도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전시장에 걸려 눈과 마음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사진의 생명은 초점이 우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좋은 렌즈를 사용하여 정확한 초점을 잡아내어도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 동안 뛰는 심장의 박동이나 숨쉬기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든 손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요즘 웬만한 디지털 카메라에는 셔터를 누르기 직전 사진이 찍힐 수치의 정보가 뷰 화인더 또는 LCD창에 보여진다. 이 창을 이용하여 셔터 스피드를 보며 사진을 찍는 습관을 들이자. 최근 신기종들의 카메라는 셔터스피드를 8,000분의 1초까지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진다. 8,000분의 1초라는 수치는 1초를 8,000개로 쪼개서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런데 흔들린 사진들의 촬영 정보를 확인해 보면 1/8초, 1/2초 심지어 1초, 2초의 사진들을 본다. 카메라에서 사용하는 1초의 시간이란 사람의 시간개념으로 본다면 5년, 10년의 세월 정도는 될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시간을 삼각대 없이 용감하게 두 손으로 그것도 짧은 팔이 늘어날 정도로 길게 뻗고 한 팔에는 명품 핸드백까지 걸어놓고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진을 위하여 열심히 촬영을 한다,

삼각대에 의존하지 않고 찍을 수 있는 셔터 스피드는 될 수 있으면 1/30초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 확인하고 1/30초보다 느린 수치라면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리개를 열거나 ISO 감도 등을 조절하여 보다 빠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하여 흔들림을 줄여보자.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는 세상이다. 흔들리는 세상이야 내가 어쩔 수는 없겠지만 사진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 뷰화인더 안에 들어온 모든 세상만물은 나만의 것이 아닌가? 내가 만든 나만의 세상과 내 마음만은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며 오락가락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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