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양한 특성

2009-06-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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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S’를 기억하세요?” “네” “ 그 오래 된 학생을 어떻게...?” “그의 성격이 유난히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지요” “그럼 K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동정심이 많아서 친구들을 잘 도왔어요” “대부분의 학생을 기억하시나요?” “아니지요, 너무 오래 되었고 그 수효가 엄청나니까 모두 뒤섞여 버렸어요. 하지만 몇몇 학생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해요” “그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였기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다. 내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학생들은 그들의 성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저학년을 가르치고 있으면 그들이 곧잘 눈에 띈다. “나 크레용 안 가지고 왔어요”라는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크레용 곽을 가지고 뛰어가는 어린이가 있다. 게다가 크레용 곽을 통째로 친구에게 주고 마치 자기가 필요한 것을 빌려다 쓰는 모습으로 바뀐다. 어떤 어린이는 친구를 돕다 보면 자신의 일이 소홀히 되도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먹을 것도 친구 먼저 주고 나서야 제몫을 챙긴다.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성격이 학업 성적보다 먼저 눈에 보인다. 그래도 이 성격이 성적처럼 숫자로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교사의 관찰 기록에 따르는 의견으로 학부모에게 알려지지만, 부모들은 그것보다는 학과 성적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성격이란 상급학교 가는 데 아무
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 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DNA와 관계가 있는 선천적인 것이어서, 생긴 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은 더욱 아니다. 성격은 선천적인 것이 바탕에 깔리지만 생활 환경, 그 중에서도 가정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양친, 형제 관계, 경제 상태, 거주지, 사회 환경...등 어린이를 에워싼 모든 환경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뚜렷한 개성으로 숙성된다고 본다. 여기서 어린이들의 여러 가지 성격을 객관적으로 몇 가지로 분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외톨이’가 되는 어린이들은 말이 적다, 놀이에 뛰어들지 않는다, 좋고 싫은 의사 표시가 거
의 없다, 혼자서 조용히 논다, 옷이나 제 물건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음식물을 나누지 않는다, 제 물건만 쓴다...등. ‘리더’가 되는 어린이는 친구를 좋아한다, 말이 많다, 물건을 잘 빌리고 빌려준다, 친절하다, 의사 표시가 명확하다, 활동적이다, 놀이의 중심이 된다, 남을 잘 도와준다...등. ‘따돌림’을 한하는 어린이는 말이나 동작으로 귀찮게 한다, 거짓말을 한다. 욕을 한다, 물건을 빼앗는다, 놀이의 방해를 한다, 신용이 없다, 게으르다...등을 들 수 있다. ‘사랑 받는’ 어린이는 명랑 쾌활하다, 말이 똑똑하고 신용이 있다, 친구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 낸다, 말이 부드럽다, 잘 돕는다...등.

성인들의 생활에서도 대동소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친구가 많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여러 사람과 멀고 가깝게 어울리면서 생활하고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서 서로 도우면서 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척도는 ‘인간 관계’여하에 달렸다고 한다.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며 생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해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그의 정책이 아닐 것이다. 그 분 자체일 것이다. ‘마치 친구를 잃은 듯한 느낌이다’ ‘죄송해요’ ‘사랑해요’...등등의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 관계는 바로 ‘인간애’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와의 서민적 동질 감에서 온다. 그는 지도자이기에 앞서, 우리 옆에 있던 소탈한 친구였다.

우리들은 친구를 사귈 때 머리, 가슴, 몸, 손으로 사귀는 것 같다. 어떤 친구와는 손을 잡고 악수한다. 때로는 부둥켜 안는다. 몇 친구와는 이것저것 따지면서 머리로 사귄다. 그 중에서 특별한 친구는 마음을 열고 뜨거운 가슴으로 사귄다. 이렇듯 여러 종류의 친구 사귀는 방법이 있지만, 가슴으로 사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가슴으로 사귈 수 있던 드문 정치인으로 생각한다. 그가 바보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살만 하다. 서로 사랑하고, 돕고, 겨루고, 견주며, 껴안고, 밀치면서도 사람은 사람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큰 소리로 ‘인간 찬가’를 부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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