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 전 대통령 장례식 현장에서

2009-06-06 (토)
크게 작게
백만옥 (전고교 역사교사)

여행중인 지난달 29일 오전4시부터 정오까지 카메라를 들고 서울광장 한가운데 서서 전직 대통령 장례식을 지켜보았다. 50년전 대학신입생으로 데모할때, 그리고 몇 년후 미 존슨 대통령 방한 환영식 군중속에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예상치도 않았던 장례식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재임시 비리에 대한 조사를 받던중 자살로 끝맺음을 한 유례가 없는 사태에 대해 더 큰 관심이 있어 그곳을 일찍 찾았다. 지하철 6번 출구는 이미 통제되어 대한문 쪽으로 올라서니 밤샘을 한 데모대원들이 남긴 컵라면과 빈 술병으로 널려있는 방석에서 잠자고 있거나 깨있는 사람중에서는 술주정이 계속된다. 촛불시위대의 촛불이 버려진 채 녹아 내린 왁스 위에 깨진 계란이 말라붙은 거리는 지저분하다. 담을 낀 길가에는 죽은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글과 현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담긴 쪽지와 리본이 겹쳐진 채 즐비하게 걸려있다.

6시쯤되어 조문객이 어느정도 모이더니 마시던 술병을 깨어 자신을 자해하겠다는 고성과 함게 가게안에서는 조문객 몇 명이 합세해 주인과 언성을 높인다. 그런 가운데 등교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짝지어 엎드려 조문을 한다. 이런 모습이 사라진 8시쯤에는 추모인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광장에는 빈곳이 그리 안보인다. 광장을 에워쌓던 경찰차량이 사라지면서 삽시간에 설치된 무대위에서는 장례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휘자에 의해 음악에 맞추어 진혼예행연습을 한다. 이때쯤 종이차양 모자와 고인의 영상이 있는 팜플렛, 풍선, 리본등 노랑색 장식들이 대형차량에 의해 운반되 행인에 나누어지더니 9시쯤에는 식장이 노랑색을 덮혀진다. 기를 앞세우고 지방에서온 학생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노사모 회원이란다.


사진을 계속 찍는 필자에게 어느 신문사에서 왔냐고 묻는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다”라는 나의 대답은 그후 두 번 더 되풀이 됐고 그리고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대통령이 검사한테 그를 죽이라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에게 간접적 책임이 있다” “진혼제는 청와대로 몰려가서 하는게 더 효과적이다” “현정부가 트인 마음을 가지면 평온할텐데 불허하니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살소동도 일어날 수 있으니 소방차 있는 쪽보다는 없는 저쪽이 사진찍을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조문객들에 의해 통과할 길도 없어질 때 검은 옷에 흰 앞치마를 걸친 청소부처럼 보이는 20여명의 여인들이 나타나 호텔앞 플라스틱 막을 닦으며 기대 서있는 필자의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란다.

군중속에 보이지 않는 조직이 있어 보였다. 대통령이 헌화하는 모습이 대형스크린에 보일 때 심한 야유와 욕설이 울려퍼진다. 이때쯤 무교동을 지나 종로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또다른 조용한 서울시민의 모습이 보인다. 극단의 양극을 보여주는 이질적인 두 시민계층은 호전적인 북녘정치세력에 대한 안전의식은 물론 위기의식도 없다는데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저곳에 붉은 십자가들이 많이 보인다. 분열과 저주속에서 지새는 저들이 과연 신의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들인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