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꽃

2009-06-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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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 분의 삶은 한 마디로 도전의 삶이었다. 가난 속에서 고등학교만을 나와 평범한 젊은이로 농부나 장사꾼의 길을 걸었을 그가 언감생심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결국 변호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돈 잘 버는 길을 놓아두고 처음부터 용공혐의로 구속된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감싸고 돌보는 인권변호사의 고달픈 길을 걸었다.

정치인이 되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스스로 당선 확률이 희박한 곳을 자원해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심으로써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가만히 있으면 될 일에 도전하다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결국 2004년 3월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14일까지 63일 동안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당당했다. 과거 어떤 정권도 감히 꿈꿀 수 없었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잘라냈다. 재벌들을 압박하고 밀착하여 천문학적 정치자금을 거둬들였던 관행(?)을 과감히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유행했던 출마자들의 금전 살포를 법으로 원천 봉쇄해 ‘돈 안 드는’ 선거풍토를 조성했다. 유권자들에게 점심 한 끼만 잘못 사주어도 당선 무효가 되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신선하고 통쾌한 일인가! 돈 없는 사람도 꿈과 열정만 있으면 당당히 당선될 수 있는 정치판이 된 것은 알고 보면 ‘바보 노무현’ 덕이다. 정치 선진국인 다른 나라들이 깨끗한 ‘돈 안 드는’ 선거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연구원들을 파견할 정도로 정치판의 일대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비록 그 자신마저 결국은 기업가가 준 돈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전임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저지른 부정을 수치로 여겨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살아 있는 ‘양심’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렇다 해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결단코 인간이 택할 길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승부수를 던지며 정면 돌파를 시도해 온 그의 운명적인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직스럽고 순박한 그가 검찰 출두를 앞둔 시점에 지지자들에게 “노무현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고,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그는 어쩌면 더 이상 삶의 의미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신 직전 20여분간 작성한 유서를 자신의 컴퓨터에 남겨놓고 ‘불꽃’처럼 사라졌다.

생의 마지막 나날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오히려 그렇게 직선적이던 평소의 기개가 엄청난 정신적 압박으로 꺾여버리자 보통 사람보다 더 절망하여 삶을 던져버리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른 것 아닐까. 그는 분명 한림대 김영명 정치학 교수의 말처럼, 오래 타는 젖은 장작불이 아니라 화려하게 타오르다 꺼져버린 한 줄기 ‘불꽃’처럼 살다 갔다. 이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에 의지하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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