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원망하지 마라

2009-06-03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한국인들처럼 대단한 민족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외세의 온갖 압력과 침략, 그리고 어떠한 수난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은 민족이 한민족이다. 그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인 특유의 강인한 인내와 투지, 그리고 탁월함, 지치지 않는 집요한 끈기와 집념 때문이다. 이러한 기질을 바탕으로 한국인은 6.25 동란 후 극심한 보릿고개 하에서도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고 교육, 문화, 스포츠 등 각계 분야별로 세계적인 인재들을 배출해 냈다. 해외 한인들도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서건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해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해서 아름다운 꽃, 풍성한 결실들을 맺고 있다.

흠이 있다면 그것은 외세의 수많은 침략과 나라가 두 동강나는 불행을 겪은 탓인지 내심 보이지 않는 원한과 적개심이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은 남의 단점이나 잘못을 수용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성품이 어쩌면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작게는 직장이나 단체, 심지어는 가정 내에서까지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잘못이 있을 때 상대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끌어주는 수용 자세를 거의 보기 어렵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 원인을 검토해 보기 보다는 문제를 일으킨 자에 대한 야유와 공격, 비난, 혹은 원망이나 질책부터 하기 바쁘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동족끼리도,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그렇다. 다혈질 때문인가, 상대의 의견이 나와 다르면 우선 성질부터 내고 안 그래도 될 일에 소리지르고 고함치고 하면서 야단이다.


그 결과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와 사망만 낳을 뿐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 그런 역사의 현장을 실감나게 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나라간의 증오심과 적대감은 국가 간의 전쟁과 테러, 폭발, 암살, 살육 등을 끝없이 유발하고 사회적으로도 온갖 끔찍한 범죄들을 야기시키며 가정적으로는 이혼이나 가족 간 살해사건 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모두 내 탓이 아니라 모든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며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쉽게 떠오르는 것으로 9.11테러가 그랬고, 조승희의 무차별 총격이 그랬고, 강호순의 연쇄 살인 등이 그랬다. 적개심과 증오, 원한으로 빚어진 결과는 이처럼 잔인하고 끔찍하다.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 남긴 14줄의 유서에는 ‘원망하지
말라’는 글귀가 들어 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가 당부한 이 한 마디는 살아있는 한국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유언은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 삶에 확실히 적용해야 될 말이 아닐까 싶다. 거듭 얘기지만 원망이나 적개심은 파멸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때문에 이 말을 남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한국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면서 국론이 양분되는 느낌이다. 영결식을 마치기가 무섭게 경찰이 서울광장을 봉쇄하자 추모하던 시민들이 이를 거세게 항의하며 경찰과 강경하게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인이 남긴 유언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치고 박고, 찢고 찢기고 아우성이다. 원한이 빚어내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여야의 치열한 대치국면에다 국민의 감정이 극도에 달해있고 북한이 미사일까지 발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나라의 안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화해와 용서, 통합만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4월 선종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각인시킨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해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쉬지않고 열심히 투쟁의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다. 나의 영혼이 더러움으로 얼룩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못된 생각을 경계해야 겠다. 내 안에 있는 증오와 적개심, 시기와 질투 등은 자칫 내 자신은 물론, 내 주위를 추하게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 아닌, 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질적인 악습으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각도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