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가 막힌 세상

2009-06-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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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좋아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해군 차관을 지낸 적이 있기에 해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손님과 해군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대통령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이어졌고 손님은 때때로 머리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손님이 돌아가자 대통령은 비서관을 돌
아보며 “오늘 손님처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를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진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이 루즈벨트의 손님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한국 사람은 대화(對話)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봉건시대 가부장제하에서는 웃어른의 하향식 훈계의 말씀만 있었다. 민주화된 오늘에 와서도 어릴 적부터 시험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만 길들여지다 보니 세대가 바뀌어도 자유토의식 대화 문화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정치인들이 귀를 막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국회는
공전하고 법안은 미결로 쌓인 채 중대한 국사와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서너 식구가 사는 가정에서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이 자자하다. 육아, 자녀 교육, 역할 분담, 가계 운용, 취미생활, 자식 혼인, 노후 설계…, 모두 대화로 풀어야 할 일들이다.


대화는 말하고 듣는 것이다. 듣지는 않고 자기 말만 내세움은 옹고집이요, 독천(獨擅)이다. 결과는 서로에게 불신과 상처만 준다.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긴 어느 젊은이에게 노스승이 주는 충고 한마디-“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얼마 후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제자의 말에 스승은 한마디 덧붙였다. “이제는 부인이 입으로 말하지 않는 무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몸짓과 눈빛으로 표현하는 ‘보디랭귀지’에도 마음을 쓰라는 얘기다. 이 충고는 역으로 아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보여 주어도 보지 못하고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폐증을 앓는 어린애처럼 마음이 흐트러지고 주의가 산만하여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어른이 너무 많다. 동물은 말(言)이 없어도 잘 산다. 그러나 청각이 어두우면 살아남지 못한다. 천적의 공격을 피하고 자연의 재앙을 막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것은 말은 적게 하고 듣기는 잘 하라는 섭리의 배려가 아닐까.

귀가 크면 명(命)이 길다 하고 복이 많다고도 한다. 절에 가면 부처님의 귀가 유난히 크다는 것을 느낀다. 가엾은 중생의 하소연을 들어 주려면 귀가 커야 할 것이다. 인생 고해를 살아가자면 우리의 고달프고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귀가 있어야 한다. 크게는 민생을 맡은 나라가, 작
게는 가족과 이웃이 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웃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귀가 막힌 세상은 살벌하다. 귀가 막힘은 마음의 막힘이요, 양심의 닫힘이기에.해서 귀가 열려야 한다. 여(與)와 야(野)가 그래야 하고 노·사·정(勞使政)이 그래야 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생산자와 소비자, 남과 여, 스승과 제자, 동과 서, 부모와 자식, 노인과 젊은이가, 그리고 무엇 보다 한 핏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남과 북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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