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

2009-05-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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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목회학박사 )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또 달리 보면 그 안엔 무한한 진리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불교의 중도사상이 그 안에 들어 있기에 그렇다. 사물과 사상을 이분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중도사상은 불교의 핵심 사상중 하나이다.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삶이란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요 죽음이란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태어났으면 살아야 하고 살다보면 죽음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가 다 태어나고 자라서 살아가는 환경이 다 틀리다.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 태어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

6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 간 사람이다. 먼저 그의 명복을 빌며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고등학교는 나왔지만 돈이 없어 대학엔 진학 못한다. 1971년 군대를 다녀온 후 1973년 결혼하고 독학으로 공부해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을 나온 그는 잠깐 동안 판사로 재직하다 옷을 벗는다. 그는 인권변호사에 이어 정치가로 변신한다. 이때부터 그의 생은 정치가로서의 성공과 실패의 길을 오가며 온갖 쓴 맛을 다 본다. 그러다가 결국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참여정부를 이끌게 된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그는 노력했다. 스스로 대통령의 최고 권력을 서민들과 함께 나누는 정치가가 되기를 원했다. 비록 한 편에서 그를 친북 정권의 좌파 대통령이라고 폄하하기는 하였지만 그의 대통령직에 있을 때의 업적은 다양하다.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기 보다는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나라를 이끌어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5년 동안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차기 정권으로 들어선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었다. 그런데 사단은 그의 임기 후에 벌어졌다. 그렇게 깨끗하게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나라를 이끌려 했던 그가 퇴임 후 1년이 조금 넘은 지난 4월 가족이 연루된 6백여만 달러의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소환을 받게 된 것이다.

일명 ‘박연차 게이트’라 불리는 이번 뇌물 수수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를 비롯해 임기 당시 그를 보좌했던 참모들과 그의 오랜 친구들까지 줄줄이 구속당하는 대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과 딸까지도 검찰에 소환되어 수사를 받는 집안 전체가 쑥대밭처럼 되어버린 사건이었다.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이라고 하는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말들을 듣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수사종결을 가져왔고 그의 가족들을 수사선상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가 목숨을 끊자 수백만의 국민들이 그의 분향소에서 분향했다. 국민장인 7일장으로 그의 장례식도 잘 끝났다.

실존주의 철학자 킬케 골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태어나지 않은 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행복한 자는 어려서 죽는 자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는 오래 오래 살다가 죽는 자라고 했다. 어쩌면 이 말은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극치의 표현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자는 낳아져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오래 오래 살다가 이웃에게 칭송을 들으며 죽음에 이르는 자이다. 비록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길지 않은 6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고 없지만 그는 죽어서 말을 하며 살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는 종결됐고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사적인 일이지만 수많은 뜻을 품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에 대 화합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전초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라며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말을 남긴 그의 유서가 마음 깊이 와 닿는 것은 비록 나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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