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보 노무현’의 소신공양(燒身供養)

2009-05-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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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평화통일 자문위원)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그는 부인 권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수수한 사실을 대통령 재임기간에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그 주장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에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거짓말이 드러나서 천하의 조롱거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진실을 덮고 싶었을 것이라는 해석. 이와 다른 또 한 가지 해석은 기소도 하기 전에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리는 정치 검찰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물론 오직 인간적 모욕을 주기위해 본질과 관련 없는 내용을 확대 재생산 보도하는 보수 언론에 대한 항거, 정치 보복적 표적수사로 형편없이 찢기고 짓밟힌 자신의 존엄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노무현식 메시지 전달의 방법이었다는 해석이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더 공감이 간다. 그의 자살은 명예자살이며 정치적 타살이다. 그는 최고자리에 있을 때조차 권위주의의 타파에 앞장섰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의 표독한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언론자유를 존중하였다.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고 민주주의와 진보와 정의를 추구하며, 생전에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이 뜻밖의 죽음을 통
해서 한국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압축 경제성장과 서구가 200년이 넘도록 피와 땀을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단 30년 안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최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 인간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 데는 개인적 절망감일 수도 있고 메시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죽음조차도 삶의 한 표현방식이다. 그의 산화(散華), 어쩌면 그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은 노무현 그의 마지막 전략일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식 없는 인간이었고 소탈한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민들의 자발적 사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민초들의 자발적 조문행렬 속에서 나는 그의 비범한 마지막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가 남긴 짤막한 유언에서 말했듯이 죽음과 삶이 인생의 한 조각이듯이 그의 죽음 또한 삶의 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의 죽음에는 어두운 구석이 없다. 그의 죽음은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는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리는 그의 모습에서 자살의 이미지보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과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이미지가 돋보인다.

그의 죽음은 나와 동갑인 그의 63년 그 치열한 삶의 마지막 표현으로 느껴진다. 바보 노무현, 그는 그 자신의 죽음이 역사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수호에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바쳐질 것을 소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보는 세상을 바로 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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