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국의 이중 장(葬)

2009-05-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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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 조치를 취한 것은 지난 달 30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고난 뒤 23일만이자 그 후 붉어진 딸 노정연씨의 뉴저지 콘도 매매 의혹과 관련 부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검찰 재소환이 예정됐던 날이다.검찰이 노정연씨가 “찢어버렸다”는 매매 계약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콘도가 경주현 전 삼성종합화학 회장의 딸 경연희씨가 미국 은행으로부터 모기지를 얻어 같은 콘도 단지 같은 층에 동시에 매입한 2채 콘도 중 1채라는 사실과 그로 인한 또 다른 의혹<본
보 2009년 5월20일자>이 한국 언론 보도를 통해 본격 제기되기 시작한 바로 다음날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이 이 같은 극단 조치를 취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단 그가 지난 1일 새벽 2시20분 10여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고 난 뒤 자신감을 내비췄고 그 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검찰 주장에 맞서 대응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줬다는 점을 볼 때 무엇인가가 이 23일 사이 내에 그에게 큰 심적 변화를 가져다 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그가 마지막으로 산에 오르기에 앞서 자신의 컴퓨터에 가족 앞으로 남긴 짧은 유서 내용 중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는 대목이 자신감과 여유가 어느새 절망과 괴로움으로 바뀌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로 밝혀짐에 따라 한국에는 지금 애도와 분노, 애석함과 실망이 뒤범벅된 묘한 군심이 술렁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고 언론은 ‘이에 장단 맞춰 때리기“에 앞을 다투었으며 그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보복‘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책임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25일 현재 한국의 인기 검색 사이트 ‘네이버’에 ‘이명박 탄핵 서명’이 일간 급상승 검색어로 올라 있는 것이 이를 실감케 한다.
마치 이러한 군심의 흐름을 예측한 듯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긴급회의를 갖고 ‘공소권 없음’으로 그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가족에 대한 수사도 함께 종료했다.결국 640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이는 훗날 세상이 노무현 대통령을 되돌아볼 때 이 의혹의 꼬리표가 그와 그의 가족에게 늘 따라다니게끔 한 결론이기도 하다.

이번 수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은 목숨을 잃었지만 검찰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진실과 정의’에 대한 사명,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한국 국민들은 사실 전직 대통령의 서거뿐만이 아니라 한국 법의 죽음도 함께 애도해야 하는 이중 장을 치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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