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권 변호사 노무현

2009-05-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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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영 (포트리 한사랑교회 목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진(自盡)을 했다. 1987년 어느 법정에서 변호하는 노무현 변호사의 변론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변호사로서 돈을 벌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여타 변호사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당시 그는 군사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정의를 위해 불의한 권력과 싸움을 하는 외롭고 의로운 변호사였다.

제 3공화국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의 숫자는 사단병력을 넘어섰다고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말했다. 안암동 고려대학교 뒷산에는 대학생들의 시체가 종종 발견되었고 이문동 정보부, 남산 정보부,
서울역 앞 대공 분실에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문을 당했다. 목사들도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던 어둠의 시절이었다.


당시 3공화국 정부는 100만달러(수출입국) 목표를 내걸고 총력수출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시대였다. 한 달에 몇 만원 받고 일하다가 공장 기계에 손목이 절단 당하면 한두 달 정도의 월급을 얹어주면서 해고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당한 젊은이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단체가 ‘도시산업선교회’ 였다. 이 곳은 산업재해를 당하여 불구가 되었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빽이 없고 무지하여 보상받는 방법을 모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중앙정보부 직원이 그런 일을 하는 목사들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의 생각은 빨리 부자가 되어야 국민전체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몇 명 정도는 희생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시산업선교회 사람들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결국 도시산업선교회가 있으면 도산(倒産) 한다느니, 도산은 빨갱이들이 한다는 막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불의를 상대로 싸웠다는 점에서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던 인권변호사, 의로운 변호사로서 노무현 대통령은 나의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역사는 당신을 기록할 것 입니다.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 일한 훌륭한 대통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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