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맹과니

2009-05-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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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수필가/목사)

사람의 인물됨을 평할 때 흔히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거론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숨쉬는 중요한 기관들이 얼굴이라는 좁은 면적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목구비의 생김새만을 가지고 인간을 평가함은 공정하지가 못한 일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근사한데 그 내적인 기능이 마비되었거나 불완전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반대로 겉모양은 별치 않게 생겼는데 그 기능은 탁월한 경우가 적잖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삼상16:7)고 강조했다.

아무튼 현대의학의 발달로 성형외과수술(Plastic Surgery)이라는 기술을 통해 이목구비를 보기 좋게 다 뜯어 고쳐 미남 미녀로 탈바꿈해 놓는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조작해 놓은 것들이 세월이 지나 늙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가니 그 흉측함이 보기에 딱할 지경이다. 외형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다해도 근본적으로 인간성이 달라지거나 인격의 변화가 없는 한 허영심의 갈증만 더해갈 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일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보고 듣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구태여 설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살림엔 눈이 보배”는 말도 있는 것이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고 했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눈과 귀라면 겉보기에 아무리 고운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조 말엽 선조왕 때 일본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두 사람의 사신을 (김성일, 황윤길) 일본에 보내어 풍신수길의 저의가 무엇인지 알아 오라고 시켰는데, 돌아온 사신들은 각각 정반대의 보고를 했었다. 김성일은 “풍신수길은 오척 단신의 체구에 눈이 쥐새끼처럼 생겨 별 볼 일 없는 자이니 안심하소서”라고 보고했고, 황윤길은 “풍신수길이란 자는 외모는 비록 왜소하나 그 눈에는 총기와 야욕이 넘쳐 흘러 필시 조만간에 침략해 올 것이니 서둘러 전쟁 준비를 해야할 것이옵니다” 라고 보고했다. 같은 인물을 놓고 두 사신의 보는 눈은 천양지차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보고를 들은 선조왕께서는 들을 귀가 온전치 못해 편한 쪽의 말만 듣고 방심했다가 어이없게 임진왜란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께는 예레미아 선지자에게 다그쳐 물으셨다. “예레미아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렘1:13). 예레미아는 “살구나무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했으며,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잘 보았다. 살구꽃이 활짝 피었으니 때가 다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으며, 다시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니 예레미아는 끓는 가마가 북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에 하나님은 말세에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모든 거민에게 임할 것이라 경고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시무시한 일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청맹과니>가 아니겠는가?!
지구촌 도처에서 천재지변이 대작하여 삽시간에 숱한 인명을 앗아가는가 하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 지 모르는 끔찍한 테러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이성을 잃은 지 오랜 김정일이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고 기고만장한 가운데 어떤 만행을 저질러 댈른지 몰라 애간장만 태워야 할 것인지?
예수의 족보 가운데 이방 여인 그것도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의 이름(라합)이 올라가 있음은 어찜인가? 라합은 남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들을 정확하게 듣고 보았기 때문에 그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어려운 현세를 어떻게 헤치며 살아갈 것인가? 도대체 삼국지는 왜 읽었으며 동서양의 역사 공부는 건성으로 했단 말인가! 현대인들이여, 너희가 무엇을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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