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과 비장애인

2009-05-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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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수필가)

미국에 와서 밀알 선교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때 한국의 경기도 소재 ‘혜림 특수장애학교 방문’시 받은 영향때문이었던 것 같다. 밀알 선교단 예배 모임에서 들은 설교 중 마음에 새겨진 말은 “장애인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정상인과 비 정상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입은 사람과 비장애인이 있는 것입니다……” 였다.태어나면서 장애를 갖고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라는 장애아이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열 손가락으로도 하기 힘든 명곡들을 저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연습했을까?

비 장애인 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을 텐데. 온 신경을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난 후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아이의 얼굴은 너무 환하고 기쁨에 젖어 있었다.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감동을 주는 노래였다. 연주회가 끝난 후 희아를 보았다. 예쁜 드레스를 차려 입고 짧은 다리로 쿵 쿵 한발 뛰듯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손가락만 장애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자리에 모였던 어느 누구 보다도 밝았다.


뉴저지 한소망교회에서 초청 강연회가 있었다. ‘강영우 박사’의 강연과 그의 저서 ‘도전과 기회-3C혁명’을 보며 인간승리를 느꼈다. 열다섯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으나 장애를 딛고 일어나 연세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거기에는 부인 석은옥여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내조가 있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박사 학위를 받고 조지 부시행정부에서 국가장애위원회위원(차관보급)까지 되었다.
그의 큰 아들은 하버드 의대와 듀크 대학원을 졸업하고 백악관에서 안과의사로 있다. 둘째 아들은 최연소 변호사였고, 2009년 1월13일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크리스토퍼(강진영)이다. 두 아들과 며느리까지 한 집안에 박사가 다섯 명이다.

강영우 박사가 시력을 잃었을 때 비관하고 그의 삶의 의지까지도 상실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랑하는 부인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랑스런 아들들도 며느리들도... 밀알 선교단의 화요예배에 가면 장애우들의 티 없이 환한 웃음이 삶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우리는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대하지만 막상 많은 것을 받고 있다. 지치고 곤한 삶의 여정에서 위로와 감사를 그리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다.

장애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 잘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비 장애인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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