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이부동(和而不同)

2009-05-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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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구 (의사, 전 스토니브룩 한국학희장)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의 지지도는 60%가 넘는다. 그의 통치철학, 생활철학은 무엇일까?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나는 ‘나’ 너는 ‘너‘ 같을 수는 없지만 국가와 사회. 세계를 위해서는 함께 화합할 수 있다. 나는 흑인, 너는 백인, 같을 수는 없지만 미국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같이 화합할 수 있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다.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이슬람 국가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나’ 너는 ‘너‘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화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교황은 과거지사를 사과하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 ‘한국’은 과거 일본의 침략, 정복, 말살, 총독지배를 받아 아프다. 너 ‘일본’은 이 사실을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와 ‘너‘는 화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반면에 나 ‘독일’은 너 ‘이스라엘’에게 끼친 잘못(유태인
학살)을 사과하며 금전적으로도 보상했다. 따라서 나는 ‘나’ 너는 ‘너‘ 같을 수는 없지만 화합하고 있다. 나는 남편, 너는 아내 같을 수는 없지만 건전한 가정을 위하여 화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남편 ‘나’를 얼마나 잘 알고(知) 행(行)하는 정도에 따라서 얼마나 ‘건전한 가정’인가가 결정된다. 쉽게 말하면 ‘부부일체’니 ‘일심동체(一心同體)’니 하는 말이 있다. 부부가 일체가 되려면 먼저 ‘부부유별’ 즉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마음공부를 하며 항상 자기를 반성하며 행동을 절제하는 수신을 해야(쉽게 말하면 정신분석
치료나 수도) 언젠가는 부부일체가 될 때가 있다. 즉 ‘부부일체’는 이상적인 ‘부부상’이고 건전한 가정을 이루려는 목표이지 현실은 아니다. 현실은 ‘부부유별’을 받아들이고 부부일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보고 느낀 것이다. 이 느낌(사랑)은 생물학적으로도 길어야 2년 간다(뇌 과학적 증명). 쉽게 말하면 나를 알고서(나의 감정을 항상 반성, 행동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 ‘너‘를 ‘나’만큼 위(바르게 대우하는)하는 마음가짐과 행동표현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 즉 사랑은 쌍방(너와 나)의 노력으로 키워간다. 사랑, 우정, 가족, 사회, 국가, 종교…등은 근본적으로 ‘나’와 ‘너‘ 인격의 성숙정도의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평화는 어머니의 성숙된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세계평화를 지켜가는 것은 아버지의 인격 성숙정도(도덕심) 그 자체다. ‘政은 正也(정치는 바른 것)’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의 정치현실을 보면 한 여자 정치인이 모든 남자 정치인을 이끌고 가르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고비 때 마다 한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힘’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이 가르쳐 준 것도 금방 잊어버리는 정치인들! 치매환자들을 생각게 한다. 한번 대통령이면 영원한 대통령인 양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나 ‘대한민국’은 너 ‘조선인민공화국’이 같을 수는 없지만(정전 상태이니까) 화합할 수는 있다. 단, 북한의 마음 자세가 북한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기 위하여 남한과 서로 도울 마음의 자세가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때가 ‘햇볕정책’이 필요할 때다. 지금껏 퍼주다시피 했어도 햇볕 한번 든 때가 있었던가! ‘和而不同’은 군자는 의(義)로써 화(和)하고 소인배는 이(利)가 있을 때만 화(和)하는 척한다. 이익이 없으면 부동(不同)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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