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문화가 힘이다

2009-05-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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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 나라의 힘은 보통 인구, 경제력과 외교력 등을 기준으로 말한다. 그러나 국력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힘이 문화인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에는 그 나라와 민족의 정신과 얼, 그리고 역사, 사상과 철학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힘의 총체는 그 나라
와 그 시대 문화력에 의해 틀 지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 민족이 사는 동 시대를 대변하고 다른 시대로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젖줄이요, 국가를 지탱해 나가는 귀중한 원천이 되는 것이 문화다.

한반도 주변의 중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 모두 세계 10위권 내에 오른 것은 경제가 곧 국력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한국은 무엇으로 이들 국가들과 어깨를 겨누며 세계 1등 국가가 될 것인가. 여러 면에서 열세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문화로 강국이 되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유수한 역사와 문화는 잘 다듬고 발전시켜 보존만 잘 한다면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을 보물이요, 국가적 유산이다.
그리스, 로마, 고대영국, 현대미국이 부강한 이유는 문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도굴하고 탈취해 가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유적과 예술품들이다. 이는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수많은 나라의 침공 속에서 우리나라는 많은 문화재와 유물들을 도난 혹은 탈취 당했다.

중국은 지금 놀라운 성장세를 바탕으로 국력이 왕성해지면서 이제는 미국마저도 두려워하는 위치에서 천하통일을 꿈꾸고 있다. 이것은 그 옛날 왕성했던 문화에서 나오는 기개다. 흔히들 우리는 동아시아 문화를 고대 중국문화에 뿌리를 둔 문화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만큼 중국문화의 역사가 깊고 방대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글이나 사상, 성씨나 이름에 그 당시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말했다. 또 어느 학자는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문화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지식기반 산업의 시대가 끝나면 곧 문화 산업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의 힘은 그만큼 강한 것이다. 문화를 모르는 국가는 이제 세계화의 반열에 설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화는 국가 간의 갈등이나 마찰 해소에도 아주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얼어붙은 동토 북한에 오케스트라가 가서 연주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고착된 이데올로기를 녹이려고 하는 것도 문화가 지닌 힘을 이용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는 국가의 원동력이자 저력일 뿐 아니라 어느 사회나 집단, 기업이건 간에 성장 발전을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지향을 추구하는 기업의 경우, 이제는 생존의 힘이자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기업문화를 특별한 전략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우리 생활이나 비즈니스, 한 나라, 그리고 국가 간의 정책에까지 어느 한 곳도 문화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
가.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문화가 연루될 만큼 그 범위가 매우 넓고 다양하다.

미국은 매년 5월을 ‘아시안 문화유산의 달’로 기리며 각종 행사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도 180여개나 되는 국가의 다인종과 아무런 문제없이 잘 어울려 사는 것도 결국 바탕은 문화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들 인종과 무리없이 살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풍습이나 전통을 잘 알아야만 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생각과 뜻, 그리고 삶의 방식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종 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이나 분쟁,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모두 쌍방 간의 문화를 잘 모르는데서 싹트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많은 문화인들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문화발전과 전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것도 미국 속에 뿌리가 있는 당당한 문화민족으로서 이 땅의 수많은 인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잘 화합하며 살아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들을 독려하고 이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화를 너무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너무 무관심하고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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