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정신건강 상담을 기피하는 한인들

2009-05-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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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희 (취재1부 기자)

두 달 전 한 한인가장이 부인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부유층이 거주한다는 고급 콘도에 살던 이들 부부에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었는데 그 중 가장 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가정불화’였다.부인은 평소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의 남편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으며 남편이 응하지 않자 사건 일주일 전에는 남편 몰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것이다.

지인들을 통해 이들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와중에 ‘부인이 그렇게 상담을 받자고 했었는데 거부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물론 정신 상담이 아닌 부부관계에 대한 상담을 뜻하는 말 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며 기자는 ‘만약 남편이 정신 상담을 받아봤으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
을 하게 됐다. 남편의 측근들과 지인 여럿을 통해 이야기를 취합한 결과 남편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종종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한 정신 상담기관의 전문가와 정신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이 전문가는 “한인들은 정신 상담 받기를 기피하며 이 때문에 증세가 악화된 다음에야 상담기관을 찾는 경우도 많다”며 “이는 한인들 대부분이 정신 상담을 예방과 진단방법으로 보기 보다는 정신질환 치료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신상담기관을 찾는 한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러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약에 중독된 아들을 둔 한 한인부모는 아들이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지경이 되어서야 정신상담 기관을 찾아왔다. 그 부모는 “상담기관을 찾으면 주위에서 아이를 보는 시선이 바뀔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담기관을 찾는 경우는 자해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증세가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제때에 상담기관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도 육체적 질환과 같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병원 찾아 치료해야 하고 주위에서도 정신질환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일을 그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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