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과 햄버거

2009-05-18 (월)
크게 작게
백악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서민 급 식당에 오바마 대통령이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들어섰다. 전혀 일정에 없던 일이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이 부통령에게 “햄버거 생각 없느냐”고 불쑥 제안한 것 뿐이다. 식당에 가서 그들은 남들처럼 기다렸다가 42번 테이블을 배정 받고 자리를 잡아 햄버거를 시켰다. 그리고 자연스레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뜻밖에 대통령을 곁에서 보게 된 시민들은 모두 흥분하였다. 제가끔 대통령의 햄버거 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대통령은 모두 사양하고 햄버거 값 7달러를 주머니에서 꺼내 지불하였으며 부통령도 자기의 식대는 자기의 돈으로 물었다. 흐뭇한 이야기다. 얼마나 사람다운가! 누가복음 6장 17절에 “예수께서 평지(平地)에 섰다.”는 특이한 표현이 나온다. 그 때의 상황은 예수께서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와 열 두 제자를 선발하고 드디어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산에서 내려왔으니까 당연히 평지에 서지 않았겠느냐 하는 그런 싱거운 표현이 아니다.

일을 시작하는 예수의 입장과 마음가짐을 천명한 말이다. 그는 낮은 사람들, 민중 곁에 선 것이다. 예수가 평생 만난 사람들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소위 상류층이 아니고 가난하고 눌리고 병든 초라한 대중이었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것도 그가 권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통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들은 그를 ‘목수의 아들’로 불렀고, 흔히 그에게 붙어 다닌 별명은 ‘세리(稅吏)와 죄인의 친구’였으며, 어떤 여자가 그를 찾아와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는 범상치 않은 행위도 사양하지 않고 감수하였다. 눈치 보기도, 아부도, 자기광고도, 잘 난 척 하는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산 것이 예수의 생애이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점이다.


허세허례(虛勢虛禮)를 최소화하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다. 힘은 속에 지니고 겉은 평범해야 한다. 한국 사람끼리 한국말을 해도 되는데도 공연히 영어를 쓰는 1세를 보면 속이 좀 뒤집힌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하는 것은 속수(俗數)이다. 생긴 대로 행동하고 가진 대로 살면 된다. 미국인은 상당히 검소하다. ‘평균의 미국인(Average American)’에 소개된 미국인의 몇 가지만 보자. 노동자의 5%는 부업을 가지고 있는데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고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 가정의 25%가 타임, 뉴스위크 같은 수준 있는 시사 잡지를 구독하며 독서를 많이 한다. 남편이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이다.

미국인은 날마다 1만 2백명이 헌혈을 하고 있고, 인구의 15%가 매주 2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다. 미국의 빈곤층이 14%나 되어 아마도 수입 면에서는 한국계 이민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구차한 살림에서도 비영리 단체 둬 군데를 정하여 정규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생활화 하고 있다. 번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계급투쟁이 심각성을 띄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과학지인 ‘Nature’에 재미있는 연구 발표가 실렸다.

쥐는 후각(嗅覺)으로 상대가 병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다. 지금까지 알려졌던 쥐의 후각은 교미(交尾) 상대, 음식, 위험을 예지하는 능력 등을 말해왔다. 그러나 최근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 연구팀은 쥐의 후각이 병을 감지한다는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쥐들은 병든 친구가 곁에 오면 감염되지 않도록 피해버린다. 이런 병균 감지의 능력은 오직 쥐와 사막에 사는 쥐 종류의 동물 거빌즈(gerbils)만이 가지고 있는 천부(天賦)의 재능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면 예방의학이 거의 필요 없을 것이다. 신종독감(돼지독감) 확산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싸였는데 냄새만으로 보균자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대책이 쉽지 않겠는가!

쥐는 동물 중에 징그럽고 더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쥐를 좋아한 것은 미키마우스를 창안한 월트 디즈니씨 정도일 것이다. 보통은 쥐를 보면 때려잡는 상대로 생각한다. 평균치 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쥐지만 질병 예감의 능력은 사람보다 월등하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학위나 재산이나 체격으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인간을 최고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하였다. 슈바이처나 간디의 생명존중 사상이 성서에서 나오고 있다.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 이념도 생명존중에 기반을 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