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주목되는 노무현 사법처리

2009-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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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고문)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3공 시절에는 각 부처등 출입 처에서 기자들에게 용돈을 주는 촌지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1972년 10월유신을 단행하면서 언론계에 대한 기강확립차원에서 이 촌지를 금지시켰다. 그런데 두어 달 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촌지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자 청와대 눈치만 보고있던 일선부처의 기관장들이 또다시 촌지를 주기 시작하여 언론계의 병폐가 되살아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윗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따르는 경향이 많은데 부정부패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정부는 항상 강도 높은 사정바람을 일으키면서 개혁을 시도하지만 언제나 흐지부지로 끝나고 만다. 왜 그럴까. 나중에 그 정부의 대통령이나 그 가족 또는 인척들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윗물이 맑지 않아 사정이나 개혁이 될 수 없었다는 속사정을 알게 된다.


최근 한국의 한 은퇴정치인이 “전부가 도둑놈인데 누굴 믿겠느냐”고 했는데 사실 위에서 도둑질을 하면 전부가 도둑놈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정부패는 먹이사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말단 경찰관이 시민들에게서 부정한 수법으로 돈을 뜯어서 일부를 경찰간부에게 상납하면 그 돈의 일부가 상급기관에 상납되는 형태가 부정부패의 먹이사슬이다. 정치나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상급자는 하급자에 대한 인사권과 지휘감독권이 있기 때문에 상급자가 상납을 원하면 하급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패턴은 조선말기의 매관매직이다. 중앙의 세도가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지방의 수령직을 팔면 돈으로 관직을 산 사람은 임지에 부임하여 그 비용의 몇 배 또는 몇 십배를 벌어들이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냈다.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은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다가 원성을 사서 타지로 전보되었는데 뇌물을 바치고 다시 고부군수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그 비용을 뽑기 위해 백성들을 더욱 착취하여 동학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부패하면 아래가 부패할 수밖에 없는데 반대로 위에서 청렴결백하기가 추상같이 엄격하면 아래가 결코 부패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상층부의 부정부패는 그 죄가 매우 크다. 자신의 부정부패에 대한 죄과뿐 아니라 아래와 그 아래, 사회전반을 부정부패화 시킨 죄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둘러싼 부정부패 스캔들이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노 전대통령뿐 아니라 부인과 아들딸, 형, 조카사위 등 온 집안이 얽혀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혐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는가 하면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2개를 버렸다느니 45만 달러를 계약금으로 낸 주택계약서를 찢어 버렸다느니 하는 주간지 거리 같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의 피의 사실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사법처리의 수위가 논의되는 이상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부정치권과 국정원, 검찰일각에서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구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민주주의라면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윗물이 아랫물까지 흐려놓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더욱 엄중한 잣대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노 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피의사실에 입각하여 처리되지 않고 정치적 고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한국에서 더 이상 법치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의 피의사실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촛불데모와 같은 반발이 두려워서 합당한 처벌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이유가 아니지만 합당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도둑놈’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만약 대통령이 애매 모호한 자세를 보인다면 임기이후 그 자신의 보신문제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아무튼 노 전대통령에 대한 수사결과와 사법처리 문제는 한국의 정치와 법치의 수준을 가늠하는 관심거리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난 정부에 대한 평가는 물론 현정부에 대한 평가도 확실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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