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융천재(天才)가 도덕천치(天痴)냐?

2009-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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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정 (은퇴목사)

10년 전 필자는 두 번 공수표(bounce check)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그때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이고 착잡하여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발행자에게 알리자니 면박이나 망신을 주는 것도 같고 체면을 구겨 자존심에 상처를 줄 듯도 싶어 접어두고 받자니 휴지가 되어 빈주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금의 경제불황과 금융위기상황을 보면 꼭 그때의 느낌이 든다.

미국 발 금융위기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가 아니겠느냐?며 전 세계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한 결 같이 미국을 향해 눈을 흘기며 입방아 질인데 그 많은 노벨경제학수상자들이나 명문대학들의 쟁쟁한 경제학교수들과 천재 금융전문가들은 숨죽여 몸 사리고 있으니 상(賞)값이나 자리 값 또는 이름값이라도 좀 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경제 불황이나 금융위기란 ‘포고’가 나오기 전에는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기록이 나쁜 이들에게 집 융자를 해준 금융프로그램)문제가 언론에 한참 들락거리더니 ‘금융가의 몰락’ ‘월가의 몰락’이란 말로 바뀌어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어리둥절하였다. 게다가 1930년대의 경제공황재발을 들먹이지만 교과서적인 내용으로 그때 상황의 체감경기를 모르니 그 말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흑막이 밝혀진 것은 아메리칸 인터내셔널그룹(AIG)이 1800억달러의 정부구제 금융을 얻어아 1억6500만달러를 보너스잔치로 편 것이 국민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기 시작한 듯싶다. 1800억달러가 몰락금융가를 회생시킨 보약이 됐다면야 들통 나지도 안 했을지 모른다. 그 무렵리먼 브러더스외 7개 투자은행도 파산하였지만 그런 심각한 기미는 눈치 채지 못하였고, 메릴 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 합병했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AIG외에 씨티 그룹, 모건스탠리도 비슷한 ‘몰염치 보너스’소문이 있었음에도 미진이었던지 잠잠하였다. 메가톤급의 대폭발은 버나드 메이도프(일명 ponzi schemes)사기사건으로 1920대의 사기꾼 찰스 폰지에 버금가는 금융사기 사건에 증권귀재로 알려진 빌레후셰가 1억 2000만 달러를 날리고 자살한 뉴스와 더불어 500억 달러나 되는 돈의 불똥이 유대인커뮤니티를 박살내고 영국 스페인 일본 한국 등지로 튀면서 금융대전이 비화했다.
앤드루 쿠오모 검찰총장의 조사로는 한직원이 640만 달러이상의 보너스 받았고, 최소 100만 달러를 받은 직원도 73명이나 되며 회사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 이상 보너스를 챙기고 퇴사한 직원도 11명이나 있었다는 발표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하였고 찰스 그래슬리 상원(공)의원은 얼마 열 받았으면 ‘경영진은 사과한 뒤 물러나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하였겠나? 하기야 그런 말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체면에 다듬어진 말씨일 뿐 듣기에 따라서는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는 말보다는 그 둘 다 선택하여 ‘나가 죽으라’는 역정으로 들리지 않는가? 반년이 지나면서 2008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프린스턴 대 폴 크루먼교수는 최근 오바마 정부의 은행부실자산 처리계획에 대해 ‘쓰레기에 돈을 쏟아붓는 격’이라고 핀잔하였고, 로버트 라이히 버클리대교수는 ‘티머시 가이트너(재무장관)는 월가의 죄수’라고 일갈했다. 실상 그들은 뼛속까지 진보주의자로 자처했던 오바마 경제정책에 일찍부터 지지했던 교수들이었다. 문제는 ‘미국의 보증 받은 사기꾼들’의 행태이다.

파산을 덜미로 구제 금융을 협박하고, 구조조정명목으로 감원퇴출 시키며, 중견사원들에게는 보너스잔치나 베풀어 세계경제불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원흉(?)들이 마치 행운의 열쇠나 쥔 듯이 착각하는 도덕적 천치(?)이냐, 불황실책을 통감하여 회개하는 금융천재(?)이냐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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