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분을 기리며

2009-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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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눈빛 형형한 수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에 놓인 꽃바구니에서 한 송이 꽃을 천천히 집어 드셨다. 무겁고 긴 침묵 속에서, 이윽고 제자 카샤파의 얼굴 위로 엷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가자, 붓다께서도 예의 그 자애로운 미소로 화답하시며 비로소 집어든 꽃을 거두셨다.

선가에서는 이 알 듯, 말 듯한 뜻밖의 아름다운 사태를 이심전심, 염화미소라고 일컫는다.


온 누리에 땅을 딛고 뿌리내린 수많은 초목들이 혼자 품으로야 어디, 한 송이 꽃인들 피우겠는가. 아니지. 어느 시인은 기막힌 어림으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고 했다. 어느 시인은 우주를, 천국을, 무한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들꽃 속에서, 그대 손바닥 속에서 보라고 했다. ‘한 시간 속에서 영겁을 붙잡아라’고도 했다.

선원을 에둘러 싸고 있는 산머리 응달을 따라 희끗희끗 쌓인 잔설들이 녹아내리자, 모하비 사막이 아득하니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선원의 뜰에도, 벌써 봄은 사박사박 걸음으로 그렇게 깊어간다. 따습고 연한 햇살을 받아 몸을 연 크고 작은 초목들이 무리 불림을 위해, 무시이래 장만해 온 저마다의 비밀스런 형색을 뽐내며, 질세라 지천으로 흐드러졌다. 물고 있던 꽃봉오리들을 터트리며, 한껏 자신들의 짓 내기에 요란하다.

산바람도 행여나 여린 꽃잎들이 다칠세라, 조심조심 결코 온몸으로 불지 않는다. 초목들의 속내를 눈치 챈 꿀벌과 나비들이 이 꽃 저 꽃으로 바지런을 떠는데, 살가운 봄볕과 산들바람의 애틋한 배려 속에서 하늘대는 꽃잎들은 마냥 즐겁기 그지없다.

아는가. 그것은 겨우내 죽음 같은 땅겉 아래서, 시절 인연만을 엿보며 인고를 떨치고 선, 무수한 생명들이 읊는 역동의 시이며, 자연과 인간이 다 함께 부르는 부활의 찬가, 대자연의 교향악이다. 우주의 춤사위다.

수많은 인의 씨줄과 연의 날줄이 끊임없이 세상천지를 엮어가는 것을 ‘인과의 흐름’이라고 한다. 그분은 그것을 법(진리)이라 천명하셨다.

해서, 철딱서니 없는 시근머리로 세상을 조작하고 재단하여 자연과 인간, 너와 나, 네 것과 내 것의 간택을 세우고, 부질없고 덧없는 그 ‘인간의 것’과 ‘나의 것’에 대한 무자비하고 가없는 탐욕은 법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동이며 고통과 악의 근원이 됨을 경고하셨다.

그리고 그 분은 신신당부하셨다. ‘잊지들 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고자 아니하면 다 함께 죽는다’고, ‘혼자서는 네가, 네가 아니라’고.


그분은,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로 룸비니 길 위에서 ‘사람’으로 오셨다. 지난 5월2일이 그 날이다. 그리고 그 분은 붓다(깨달은 자)가 되었고, 길 위에서 80년을 고통 받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 치열하게 사시다, 낡은 몸을 쿠시나가라의 길 위에서 벗어던진 분이시다.

나는 그 분이 설하신 통연하고 명백한 ‘법’을 보고, 자연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과 나누신 그분의 무량한 사랑과 자비의 삶을 보고, 그 취할 법열을 겨워했다.

이제는 법의 몸으로 영원무궁하신 그 분은 ‘그렇게’ 살아갈 ‘눈치 챈 자’들의 성스러운 ‘님’이시다.

박재욱 (LA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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