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제노동소의 공주와 왕자들

2009-05-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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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새벽 6시, 호수를 낀 언덕 중턱에 벌써 아이들이 세면대에 하나 둘씩 모여들어 눈을 비비며 이를 닦고 세수를 하려고 주욱 모여 섰다. “녀석들, 집 같으면 방학이라 늦게까지 TV보랴, 컴퓨터 하랴 새벽이나 잠자리에 들어 대낮까지 퍼져 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벽두 새벽부터 교도소로, 헤비테트로, 홈레스쉘터로 각자 맡은 일을 향해 준비하느라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 전날 고된 일을 한 덕분에 10시 반에 취침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코를 골며 자야했기에 새벽에 거뜬히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자신들이 대견해 또 다른 힘든 스케줄 앞에서도 마냥 씩씩하고 즐겁다. 각 조대로 나뉘어 호명이 있은 다음 부지런히 시리얼과 쥬스, 베이글로 아침을 먹고 그나마 조금 늦은 아이는 대충 크림치즈를 발라 주먹에 움켜쥐고는 자기 벤에 올라타느라 바쁘다.

다들 집에서는 공주병, 왕자병으로 한몫들을 단단히 할 귀한 몸들일 텐데(?) 이곳에서의 아이들은 마치 조금 과장해서 자기들 식의 표현으로 ‘강제 노동소(?)’란다. 그렇게 더운 날씨에 옷이 흠뻑 젖도록 일을 하며 먼지와 땀이 범벅이 되서 돌아오는 그들은 더 이상 미남미녀 왕자님, 공주님들이 아니다. 삶의 의지와 투지가 용솟음치는 산업 전사들과 같은 모습으로 의기양양해서 벤에서 내려 텐트가 있는 곳으로 언덕을 뛰어내려오는 그들은 그야말로 개선장군 같은 모습들이다. 장마로 휩쓸어버린 웨스트체스터의 빈촌의 썩은 웅덩이와 흙이 떠밀려와 엉망이 된 마을을 뒤집어엎어 깨끗이 정리정돈을 하느라, 젖 먹던 힘까지 다 썼을 텐데, 아이들에게서는 피곤함보다는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다. 집에서는 운동이나 노동은커녕, 얌전히 책 앞에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과 간식으로 입과 배를 즐겁게 채우는데도 늘 몸은 늘어지고 피곤하고 때로는 생기가 없어 보여 부모에게 걱정스럽게 보였던 그들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자기방의 청소는 고사하고 쓰레기 하나도 버리지 않던 그들이 캠프사이트의 모든 쓰레기들을 수시로 보이는 대로 다 주워서 치우는가 하면, 홈레스 쉘터에서 무숙자들의 방과 침대시트, 그리고 구호용품을 가지런히 정리와 청소를 한다. 심지어는 쉘터의 지저분한 화장실 그리고 썩은 냉장고, 죽은 쥐들까지 말끔히 청소를 하고 청결한 장소로 만들어놓는 그들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 우리 인솔자들은 의아해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바로 그들의 가슴과 생각을 따스하고 생동감있게 채워준 사랑의 나눔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이다. 광야캠프장에 온 첫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해 하던 그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땀 흘려 고생하는 신선한 노동의 즐거움을 뛰어넘어 자신의 수고와 땀으로 다른 사람의 눈물을 씻기고 지친 인생들에게 삶을 함께 나눈 자기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에 자신에게 한없는 박수와 갈채를 보내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바로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가게 되는 귀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에게 부르짖는 “leave me alone, don’t bother me”등의 참된 의미는 “제발 바른 권위를 가지고 나를 제대로 인도해 주세요”라는 또 다른 의미라고 한 제임스 돕
슨의 말을 광야캠프의 아이들의 변화를 통해 또다시 깨달으면서 아이들을 생명으로 채우는 그 여름을 또 기다리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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