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2009-05-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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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블랙마운틴 및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은퇴 선교사 50여명이 지난 8일 현지 교회에서 한국의 기독교 TV인 CTS 방송과 기독실업인회가 주최한 위문행사에 참석해 감사의 메달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복음전파와 봉사활동을 하며 젊음을 바쳤던 미국 선교사 20여명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산골마을에 모여 살고 있어 화제다. 8순이 넘은 이들은 젊은 시절 한국에서 봉사한데 이어 은퇴 후에도 북한과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시. 미 동부의 남북을 잇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블루리지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인구 1만여명의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이곳에는 5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20~30년간 교육·의료 등 각 분야에서 봉사하다 은퇴한 선교사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할머니(87)도 그중 한 명. 부모가 일제시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해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주예수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활동했고, 한국전쟁 때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환자와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


평생 복음전파·봉사활동 헌신 선교사 20여명
노스캐롤라이나주 산골마을에 함께 모여 살아
은퇴후에도 유학생·북한 돕기 등 여전한 애정
CTS·기독실업인연합, 식사·공연 등 위문잔치


그녀의 집 정문에는 ‘부례문’이란 한글 문패가 걸려 있다. 그녀는 “60년 경주 문화중고등학교를 재개교시키는 등 교육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한글 이름이고, 내 이름은 부마리아”라면서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늘 한국을 가슴에 새기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온 후 장학재단을 설립해 한국 유학생들을 도왔다.

로이스 플라워즈 린튼(83) 할머니는 구한말 근대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벨 선교사의 외손자인 휴 린튼의 부인. 한국전쟁 뒤부터 94년 순천결핵재활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5년간 결핵퇴치에 일생을 바쳐 왔다. 그녀의 6남매 자녀 중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활동 중인 둘째 스티븐 등 4형제가 모두 북한 돕기에 나서는 등 린튼 집안은 4대째 한반도에서 봉사하고 있다. 린튼 할머니의 집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이 머물다 가는 등 이곳을 방문하는 남북한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동네에 살면서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돕고 있는 셋째 제임스 린튼씨는 “한국과 인연이 4대째가 되다 보니 남북한 구분 없이 많은 분들이 어머님 집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윌슨 박사는 1900년대 초 조선에 파송되어 나병환자 요양소인 ‘애양원’을 세우고 56년까지 1만명이 넘는 나병환자를 돌봤던 인물이다. 그의 장녀로 한국서 태어나 애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선교활동을 했던 엘리자베스 탈마지(98) 할머니도 동네주민이다. 이밖에 53년부터 90년까지 전주예수병원 간호부장을 지낸 매리 씰(84) 할머니와 계성고와 장로교 신학대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던 메리 안네 멜로즈(86) 할머니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선교사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배경에 대해 제임스 린튼씨는 “블랙마운틴에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전 마지막 교육을 받던 센터가 있고, 안식년 때 주로 여기서 휴가를 즐긴 인연 등이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블랙마운틴이 남장로교의 중심지이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으로 평양 외국인학교 출신인 고 루스 그레이엄 여사가 고향인 이곳에 은퇴 선교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점도 한몫 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고령화로 과거 40여명이 거주하다 최근에는 2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지난 8일 블랙마운틴 시내에 있는 장로교회에서는 이들을 위한 위문행사가 열렸다. 한국 기독교 TV인 CTS와 기독실업인연합회(CBMC)가 이 마을과 인근에 거주하는 은퇴 선교사들을 초청해 한국의 재건을 위해 젊음을 바친 선교사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마련한 것으로 워싱턴과 애틀랜타의 한인 200여명도 참석했다.

주최측은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대접한 뒤 감사의 메달을 증정하고, 성악과 피아노 및 전통 부채춤 등 위문공연을 통해 선교사들을 위로했다. 칼 바틀렛 블랙 마운틴 시장은 “한국분들이 먼 곳까지 찾아와 은퇴한 선교사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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