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둥지 안의 영양소

2009-05-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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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온다. 아기새들이 노란 부리를 힘껏 벌리고 먹이를 받는다. 그러다가 아기새들이 얼마만큼 자라면 날아다니는 방법을 배운다. 둥지 속의 아기새들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둥지 안에 있을 때 그 부모새들이 할 일이다. 새끼 캥거루는 엄마 배에 달린 주머니 속에서 약 6개월 동안 젖을 빨면서 세상 구경을 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어린 생명은 모두 여리다. 몸과 마음이 약할 뿐만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는 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부모의 할 일이다. 유치원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온갖 것을 배운다는 베스트셀러 책이 있지만, 자녀교육은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부터 태교의 중요성을 알리던 우리 선조들의 지침은 놀랄 만 하다. 설령 이런 태교를 무심히 지나쳤더라도 아기가 태어나면서 가정교육이 시작된다. 가정교육과 유치원이나 학교교육의 차이점은 체계가 있고 없고에 달려있다. 학교교육은 체계에 따라 계획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와는 달리 가정교육은 부모와 자녀가 같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들이 교육한다는 생각이 없이 어린이를 돕는다. 음식 먹기, 몸 씻기, 옷 갈아입기, 말을 주고받기, 같이 놀기, 장난감 간수, 잠잘 준비...등 어린이
가 가족의 한 사람으로 같은 생활권에 들도록 훈련한다. 이 모든 과정이 가정교육이다.


어린이들은 이런 일상생활 훈련을 받으면서 언어의 기초 능력이 길러지고, 정서가 함양되며, 가치관을 깨닫는 인격의 바탕이 생기며, 가족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즉 인간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학교에 가기 전의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알게 된다. 필자는 12년 동안 세 살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한 체험이 있다. 이미 이대부터 어린이들에게서 현저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우선 부모와의 대화가 많았던 어린이들 언어 표현력이 달랐다. 어휘수가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났다. 부모의 보살핌이 있던 어린이들은 생활하는 태도에 자신이 있었다. 자기 일을 제손으로 처리하려고 노력하였다. 더 값진 것은 다른 친구들에 대한 배려
가 있었고 남을 잘 도와주었다. 말을 잘못하는 어린이들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능력은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잘 돕는 부모의 태도를 눈여겨본다. 부드럽게 말하는 부모를 흉내내어 자기도 부드러운 말씨를 따른다. 친구가 때리는데 맞고만 있는 어린이가 딱해서 보고있던 누군가가 “너도 같이 때려”라고 하였으나 그는 끝내 때리지 못했다. 부모나 형제한테 매맞는 경험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 그렇다면 그만한 투자를 할 일이다. 그 투자는 결코 금전이 아니다. 시간의 투자를 말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의 많고 적음은 그들의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땐 혼자 두고, 필요 없을 땐 같이 있자고 하시네요”
어느 청년의 말이다. 새길 만 하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가고, 비상사태를 당하면 가족에게 연락한다. 가족이 있는 가정은 정신과 마음의 중심이고, 일상 생활의 근거지이고 하루의 출발점이며 귀착지이다. 또한 자녀의 교육 장소이다. 어느 면에서 지식보다 중요한 삶의 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따뜻하고, 새롭고, 앞으로 나가고, 서로 돕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삶의 터전을 넓히는 교육의 바탕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에는 부모에게 감사하는 ‘어버이 날’이 있는 5월이 ‘가정의 달’이다. 특별히 이런 행사를 마련한 연유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다. 이 지역에서 벌이는 각종 행사는 한국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까닭이다. 여기에 5월을 건강한 자손들의 성장을 위하여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계절로 삼으면 더욱 깊이가 있겠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연한 초록색이 울긋불긋한 봄꽃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봄의 아름다움은 여름이 뿜어낼 열기를 잉태하고 있어서이다. 어린이의 아름다움은
실컷 성장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그 잠재력을 구김살 없이 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5월에 새롭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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