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들이 텃밭에 뿌린 씨앗

2009-05-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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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10 년 전쯤 일이다. 클리닉에서 일하던 30대 중반의 젊은 한국인 직원이 이웃집들은 아름다운 초록융단 같이 깔린 잔디밭을 그림처럼 감상하고 있는데 땅에 주저앉아 호미질을 하며 텃밭 농사를 짓는 시어머님이 창피하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여름이 되어 텃밭은 흙 속에 잉태한 씨들이 새 싹이 트고 자라 각종 야채들로 생명력이 넘치는 텃밭이 되었다. 온 식구들은 채소 밭에서 딴 무공해의 유기농 상추를 따서 쌈을 싸먹고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먹으면서 기계문명과 냉동음식에서 자유로워졌다.

농사짓는 할머니를 부끄러워했던 손자 손녀들도 이슬이 매달린 체리와 토마토를 따 먹으며 즐거워했다. 맑은 산소를 내뿜는 푸른 채소밭은 가족의 건강과 가족사랑을 실천하는 현장실습장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자연 친환경 운동의 캠페인을 제일 먼저 시작한 분이 아닌가? “당신 잔디의 반을
먹어라! (Eat Half Your Lawn!)” 도시농업네트워크의 설립자 잭 스밋트(Jac smit)가 외치고 있는 말이다. 잔디를 거둬내고 채소를 심으라는 맹렬한 캠페인이다.


올해 텃밭 가꾸기는 녹색운동과 함께 전국의 미국가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씨앗 판매도 급증해 해리스씨앗의 웹사이트는 매일 몇 만 명이 접속하고 있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오바마 미셀이 백악관 뜰로 인근 초등학생 26명을 초대해 텃밭을 가꾸는 행사가 진행됐었다. 백악관 남쪽 뒤뜰에 뒤엎고 텃밭을 만들어 55종의 채소 씨들을 뿌렸다. 미셸 오바마가 재킷과
검은 바지, 차림으로 텃밭을 파헤치고 삽질을 하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활력이 넘쳐 보인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건강음식, 가족과 이웃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기쁨과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백악관 텃밭에서 자라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기른 채소가 대통령 가족 식탁에 옮겨진다고 한다.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에 옮기는 국민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백악관에 둥지를 튼 흑인 대통령 가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손녀들을 돌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3세대가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한인 이민 1세어머니들의 생애를 다시 재조명해 본다.

아들과 사위를 따라 이민의 물결에 휩쓸려와 치열한 이민전쟁의 전투병이 되었다. 손자들의 양육과 집안일로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일의 연속 속에서 온 몸을 던져 어머니 대역을 맡았다. 한인 할머니들은 둥지에서 알을 품어 따뜻한 체온을 유지해주고 새끼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쪼아 먹이는 어미 닭처럼 손자들을 길렀다. 서구의 가족개념은 동 한 수평관계 속에서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얽혀있다. 지금은 노동력을 잃고 최전선에서 물러났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이민의 삶에서 뿔뿔이 흩어지기 쉬운 가족
을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 되었고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심어주었다.
과감하게 잔디를 파헤치고 텃밭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기르고 집안일을 도맡았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희생을 딛고 이민초기의 전쟁터 같은 지뢰밭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백악관에 입성하여 손녀를 돌보고 있는 대통령 부인 어머니 보다 더 헌신적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일등공신은 한인 이민사의 초석을 이룬 어머니들이다. 지금 주류사회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이민 후예들의 원동력의 근원은 이민 1세 어머니들이 텃밭에 뿌린 씨앗의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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