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단 1명의 관객을 위한 연극

2009-05-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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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 2부 차장)

3일 오후 극단 모노드라마의 ‘신의 아그네스’가 공연되고 있는 32가 한인타운의 J’z를 찾았다. 공연 시간인 5시에 거의 맞춰 갔는데 객석엔 아무도 없었다. 진행을 맡은 이가 “5분 후에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안내할 때 기자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 2시간이 넘는 공연 동안 유일한 관객으로 있어야 하는, 세 명의 출연자들이 오직 나를 위해 무대에 서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이 중간에 두 명의 관객이 더 입장하는 덕에 ‘막중한 책임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지만 공연을 맘껏 즐길 수는 없었다. 관객의 수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 특히 눈물을 흘리며 열연하는 주인공 아그네스의 연기를 보며 애틋함과 안타까운 심정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연극인들은 무대는 마약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번 연극에 빠진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얻었던 경험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처음 무대에 등장했을 때의 먹먹함, 빛나는 조명, 관객의 웃음과 한숨, 마치고 났을 때의 허탈함과 아쉬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눈물 흘렸던 뒤풀이 등. 그래서 가난하고 고된 길이지만 끝까지 가기도 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한다.보는 이들에게도 연극 관람은 분명 중독성 있는 매력이 있다. 특히나 좁은 소극장 어두운 객석에 앉아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고 거친 숨소리를 느껴 본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기회가 되는 데로 다시 극장을 찾게 된다.


연극인들이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보다 더 순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도 똑같이 세속적인 명성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행위는, 특히 뉴욕에서 한국어 연극을 지속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고 우직한 순수함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뉴욕에는 연기, 연출, 뮤지컬, 무대 등 공연예술 분야에 경험 있는 인재들이 넘쳐나고 이들은 늘 무대를 갈망한다. 최소한의 물적 지원과 관심만 기울여도 수준 높은 한국어 연극 공연이 계속 열릴 수 있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과 무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나니 벌써 7시 50분이었다. 다음 공연시간까지 불과 1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객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단 1명의 관객도 없는 상황은 되지 않는 것일까 우려하며 극장을 나섰다.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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